Hotel, Resort, Dining and Fashion

2022. 12. 4.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기대되는 곳 중 하나가 컨펙션즈 바이 포시즌스이다. 비교적 모형 만들기에 관대한 세계여서 가장 화려한 모양들을 만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향신료의 사용도 좀 더 적극적일테니 말이다.

한국에서 '맛' 이란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달지 않아야 할 케이크들을 바라는 상황에서 '맛의 층' 이나 '맛' 이 의미하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입맛은 개인 취향이죠' 따위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전 페이스트리 셰프가 만들었던 케이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분위기를 맛으로 표현한 그 케이크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을 본적이 없다. 사실 그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그 이후에는 평범한, 다시 말해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전형적인 맛을 - 이걸 클래식 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 만났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케이크 모양이 천편일률적이지 않았었다 정도?


첫 시작이 불만인 것을 보니 짐작이 되겠지만 그렇다. 컨펙션즈 바이 포시즌스를 들어가자 마자 보이던 것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모양들이었다. 모양이야 그럴 수 있지, 반드시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맛의 구성조차 아쉬웠었다.


"초콜릿 버블' 은 초콜릿과 라즈베리, 전형적인 맛 구성이다. '스노우 볼'은 '초콜릿 버블' 이 단순하게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좀 더 맛의 층이 다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잘 만들었지만 딱 그 정도 선에서 멈춰 있다. 잘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결국 '맛' 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보여줘야 할텐데 여전히 새로 온 셰프의 세계는 물음표다. 

게다가 의도는 이해하지만 또다시 드러나는 한국의 현실은 오히려 암울하다. '딸기 버블'은 국산 딸기의 한계 - 단맛은 있으나 끝이 흐릿하면서 수분이 과하다는 느낌, 신맛의 부재 - 를 그대로 보여준다. '피스타치오 버블' 은 럼에 절인 체리의 맛과 향은 그런대로 좋았으나 피스타치오의 향과 맛을 나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생각보다 그리 달지 않다는 것이다. 셰프가 몇 년동안 일본에 머무르면서 생각이 바뀐 것인지, 한국에 들어와서 주요 고객층 - 우스개 소리로 나보고 호텔 관계자냐고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정작 출근 도장을 열심히 찍는 고객들은 나 말고 훨씬 많다. 아니 나는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이다. - 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셰프의 성향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셋 중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이유가 섞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첫 날 밀푀유까지 총 네 가지를 먹으면서 차나 커피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일주일 가량 뒤에 나올 '바카라' 와 협업을 통해 만들 '크리스마스 쥬얼' 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었다. 모양이야 어차피 '바카라' 의 디자인을 토대로 만들텐데 여전히 셰프의 일본에서의 활동 결과물은 인스타그램에만 존재할 뿐 한국에서는 보여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입 먹어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었지만 새로 온 페이스트리 셰프는 향신료의 다양한 향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여전히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입안에서 느껴지는 진저 브레드와 시나몬의 향은 아주 찰나의 시간차를 두고 넛맥과 정향이 뒤따르면서 입안 가득 향을 풍부하게 채워놓는다. 그 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느껴지는 오렌지의 상큼함이 깔끔하게 입 안을 씻어준다. 향신료의 향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복합적으로 느껴지게 함으로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을 알린다. 셰프는 단순하게 지난 까르띠에처럼 무난하고 평범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물론 셰프는 예전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지만 직접 먹어보진 않았으니 까르띠에 케이크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크리스마스 쥬얼' 마저 그리 달지 않다. 차나 커피의 도움 없이 한 판을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울 수 있을 정도인데, 정작 인스타그램이든 블로그든 리뷰를 찾아보면 지금도 달지 않아서 괜찮았다는 호평이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