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el, Resort, Dining and Fashion

2020. 9. 30.


한국에서 딤섬이란 일종의 찐 만두 종류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고전적인 딤섬들의 경우 한국에 많이 알려진 것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짓수는 생각보다 많은데 물론 여기에서 그런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럼 왜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수많은 가짓수를 생각하면 유 유안의 딤섬 메뉴는 꽤 조촐한 편이기 때문이다. 여느 광동식 레스토랑을 방문해도 흔히 볼 수 있는 돼지 갈비나 닭발부터 해서 순무 케이크 등은 오픈 초창기에는 존재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유 유안에서 만날 수 없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도 지긋지긋한데, 정말 딤섬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다면 그만큼 서울이란 대도시 안에서 다양한 딤섬들을 진작에 만났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이제는 분기별로 메뉴 교체가 이뤄지는데 그때마다 간절히 기도할 정도이다. 제발 이 딤섬은 메뉴에서 빼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그 간절함은 항상 이뤄진 적이 없었다. 우스개 소리로 이제는 내가 좋아하면 그 메뉴는 반드시 빠진다고 할 정도이다. 갈수록 지친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미식가니 푸디니, 서로 지켜보겠다니 한단 말인가? 

그래도 바뀐 딤섬들을 기대한다. 항상 말하지만 유 유안의 요리들은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는데, 여러 악조건 속에서 버틴다는 인상이 강하다. 짧게는 3개월만에 사라질지 몰라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새 딤섬들을 말이다.






Shiitake and chicken dumpling

Assorted mushrooms with black truffle dumpling


포자냐 교자냐 이런 것을 떠나서 한국에선 유독 딤섬 피가 얇은 것을 선호하는데, 하가우도 그렇고 대체로 그런 딤섬들은 얇아서 속이 비치는 것이 아니다. 얇다 못해 쫄깃쫄깃 해야 잘 만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한식에서의 만두를 생각하지 말자.

표고버섯이 들어간 포자는 피가 두꺼워 퍽퍽하다고 말하겠지만 사실 생각보다 그리 퍽퍽하지 않다. 적당히 촉촉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즐거움이 있고, 표고 버섯과 닭이 들어가 있으니 감칠맛도 잘 느껴진다. 하지만 이 딤섬도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




 


Steamed rice flour crepe with pork and enoki mushrooms


유 유안의 청판 - 유 유안에서는 청판이라고 표기한다. - 은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오픈 초창기때를 생각하면 어느 순간 피가 너무 얇아지고 속은 가득 채워서 먹기에도 불편하고 맛의 균형이 어긋나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변했는지 그 이유는 짐작하지만 어찌되었든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문을 잘 안하지만 사실 사전에 요청하면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 주문했을 때 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소스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르 쉬느아에서도 대다수 손님들이 짜다고 항의해 절반 가량만 부어줬었는데, 유 유안도 그래서 바뀐 것일까?







Spring roll filled with pork and shiitake mushrooms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항상 불만만 가질 수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었지만 유 유안은 튀기거나 구운 딤섬을 정말 잘 만든다. 바삭한 질감, 그 안에서도 입안에서 어떻게 부숴지느냐, 또 입안에서 걸리는 부분은 없는가 등을 따져봐도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이 춘권도 마찬가지이다. 입안에서 바스락거리며 겉껍질은 잘게 부숴지는데 입안에 상처를 전혀 입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탄탄하게 속껍질은 어느 정도 형태를 유지하기에 한 입 베어물어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춘권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정도이다.


하지만 속 내용물만 바뀔뿐 형태는 거의 변함이 없으니 한편으로 지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좋은 조리 실력을 갖고 있으니 과감하게 새로운 딤섬을 몇 가지 더 만들법도 한데, 몇 번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유 유안은 북경 오리로도 유명한 곳이니 오리 고기가 들어간 춘권도 만났으면 좋겠다.







Pan - fried pork dumpling

내가 가장 좋아하던 딤섬 메뉴 하나가 빠진다는 이야기에 정말 우울했었다. 그런데 그 우울함을 100%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이상 날려줄 딤섬이 드디어 드디어 나왔다. 水煎包 또는 生煎包 라고 부르는 딤섬을 사실 몇 번 건의한 적은 있었다. 왜냐하면 유 유안은 샤오롱 바오도 잘 만들기 때문이다. 지방의 고소함이 조금 덜 하지만 - 나는 그 이유가 분명 있을거라 생각한다. - 뒤에 느껴지는 돼지 고기의 단맛을 잘 살리기에 분명 팬 프라이드 형태도 맛있게 - 앞서 유 유안은 튀기거나 굽는 딤섬을 정말 잘 만든다고 이야기 하였다. - 만들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역시 내 생각은 맞았다. 다만 포자가 아닌 교자여서 혹시 내가 모르는 어느 지방의 요리인지 문의를 했었는데, 교자로 바꿨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여전히 전체적인 딤섬 메뉴를 놓고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이 딤섬 하나만으로 어느 정도 만족한다. 바라건데 이 딤섬만큼은 계속 메뉴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 19와 상관 없이 유 유안은 특히 주말 낮에는 예약을 여유 있게 하지 않으면 예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 정도 인기라면 딤섬 메뉴 가짓수도 많아야 하고, 유 유안만의 시그니처 메뉴까지 등장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 이래 꾸준히 존재하는 딤섬 메뉴와 매번 사라지는 딤섬 메뉴를 생각해보자. 다음달이면 유 유안이 오픈한지 5년째이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에서 이 집이 잘하네, 못하네, 미쉐린 별을 받았네, 못 받았네 타령만 하고 있을것인가?

2020. 9. 28.


코로나 19 때문에 고통 받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현실에서 유 유안도 피할 수 없었는가보다. 어차피 대다수 사람들은 북경 오리와 마파 두부, 게살 볶음밥 위주로 많이 주문하기 때문에 새 메뉴 가짓수는 언제부터인가 제한적인데, 이번 새 메뉴 개편은 그 제한적인 부분이 더욱 늘어났다. 다시 말해 정말 일부 메뉴만 바뀌었을뿐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코로나 19를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과연 한국에서 광동식 요리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할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변함이 없다. 북경 오리만 주문 한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광동식 레스토랑에 가서 북경 오리만 주문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행동들이 반복되다 보면 정작 레스토랑의 정체성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제한적인 선택만 가능해졌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정말 북경 오리를 사랑한다면, 이제 홍콩, 마카오 타령 그만하고 왜 그 도시의 북경 오리와 - 사실 홍콩, 마카오에 가서 북경 오리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한국의 북경 오리는 맛이 다른지 진지하게 논의가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만 열악한 오리를 먹어야 하는가?






Marinated chicken in lemon sauce dressing


이번에 바뀐 요리들을 모두 먹어 본 결과 공통점은 대체로 매운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날이 쌀쌀해지는 가을이 다가오니 일부러 열을 낼 수 있는 맛을 선택한 것 같은데, 그런 계절 특성을 감안한 메뉴가 생기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요리 구성을 보면 늘 아쉽다. 같은 닭을 사용하더라도 다양한 전채 요리를 만날 수 있겠지만 결국 사람들의 선택이 없으면 내놓으나 마나일테니 구성이 이렇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인구 천만이 산다는 도시에서 여전히 광동식 레스토랑의 갯수는 손에 꼽을만 하고, 그나마 그곳들도 제대로 광동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 드물다면 누가 가장 큰 손해를 볼까?








Double - boiled pork soup with tomato, ginko nut, yam and pork offal


돼지를 주재료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 유안의 수프는 맑은 편이지만 - 맑다는 의미가 수프가 투명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래주는 수프였다. 사실 이 정도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한국에서 그나마 이런 향과 맛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라 그동안 유 유안에서 수프를 주문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당분간 자주 주문할 생각이다.







Deep - fried chicken with spicy sour sauce

가금류 요리는 그나마 존재하던 오리 요리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이미 바베큐 메뉴에서 오리 구이가 사라진지도 꽤 되었는데, 앞서 서두에서부터 북경 오리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위안인 것은 크리스피 치킨 요리가 다시 등장했다는 것인데,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된 것이 바로 이 요리이다. 라조장이 들어가는데 사실 이보다 좀 더 맵고 짜고 신맛이 느껴지면서 특유의 향이 같이 느껴져야겠지만 파인 다이닝의 요리를 생각한다면, 한편으로 대다수 한국인들의 눈높이를 생각한다면 꽤 부드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단맛이 조금 더 강조되면서 아주 약한 매운맛과 적당한 정도의 신맛을 느낄수가 있는데 향은 큰 거부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쉬움이 있는데 바로 닭이라는 재료이다. 이 작디 작은 닭에서 그런대로 껍질의 바삭함이 느껴지지만 이내 사그라든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그렇다고 위안을 삼아보지만 상황이 앞으로 더 나아진다고 해서 음식도 더 나아질까?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보자. 언젠가 코로나 19 상황은 끝날테니까, 하지만 음식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더욱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20. 9. 22.


코로나 19 때문에 모든 것이 우울한 가운데 어찌되었든 시간은 지나가니 곧 추석이 다가온다. 작년처럼 올해에는 어떤 추석 메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이번에는 어떤 월병을 선보일까? 그런 기대감을 갖고 르 쉬느아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19였다. 워낙 수입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이런 큰 악재까지 겹치니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메뉴 개발은 제한적이게 된다. 한편으로 이곳 제주 신화 월드도 홍보팀도 엉뚱한 일을 종종 계획하는데, 이제 북경 오리 타령은 정말 그만 보고싶다. 좋아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강요되는 분위기가 싫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꾸준하게 알란 찬 셰프는 특선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따로 추석을 맞이한 메뉴는 아니고 king tiger prawn 메뉴를 내놓았다.







Stir - fried King Tiger Prawn, Ginger and Spring Onion


총 네 가지 메뉴가 준비되었는데 각 요리마다 매력이 있지만 그 중 나는 이 생강과 spring onion 이 들어간 요리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king tiger prawn의 단맛, spring onion의 향긋한 단맛, 거기에 갑각류의 감칠맛이 살짝 덧대어지고 끝 마무리로 생강의 알싸함까지 여기에 잘 어울리는 술까지 더해졌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운전을 해야 해서 선택할 수 없었다.


한동안 지겹게 다닌적이 있어서 제주도는 이제 더이상 여행지로써 매력이 없는데, 르 쉬느아 때문에 자주 가게 된다. 국내에 유이하게 광동 요리를 내놓고있지만 다른 한 곳에 비해 좀 더 자유롭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이지만, 특히 북경 오리 열풍은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요리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 목적지로써 존재하는 곳, 하지만 현실은 갈수록 제한을 두게 되니 더욱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자주 다녀오고싶다. 르 쉬느아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2020. 9. 16.


코로나 19 때문에 모두가 고생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번처럼 해외에서 셰프를 초빙해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쪽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니 결국 방향을 조금 바꿨다고 들었다.





Cantena Malbec 2017







Spicy pork sausages and mozzarella Empanadas accompanied with garlic and paprika aioli, tomato, cilantro and red onion salsa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포시즌스 호텔이 있으니 레시피는 그쪽에서 받았다고 한다. 엠파나다는 부드러우면서도 바삭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하게 씹히는 질감이 흥미롭다. 입안에 넣어 베어 물자 퍼지는 지방의 고소함과 함께 살짝 올라오는 돼지고기의 향이 맛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여기에 살사는 새콤함을 더해주고 아이올리는 고소함을 더해주는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짝을 지은 와인이다.

와인을 처음에 그냥 마셨을 때에는 바디와 산미는 중간 정도인데 조금 강하게 느껴지는 탄닌이 무난하게 느껴졌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껴지는 탄닌은 그 강도가 처음에 비해 덜하긴 하나 엠파나다와 함께 먹으면 굉장히 매혹적이게 느껴진다. 쌉싸름하게 시간차를 두고 입안에서 마무리 되는 것이 입맛을 한층 돋운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Terrazas de los Andes Reserva Torrontés 2019







Pan roasted halibut, chorizo, cherry tomatoes, red chili, sheep cheese

한국에서 토마토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는 놀라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느껴지는 감칠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잘 구운 광어의 은은한 단맛과 토마토가 갖고 있는 감칠맛 이외에도 적절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초리조와 페타 치즈의 짠맛과 감칠맛과 고소함이 더해지니 이 요리만으로도 즐겁다. 아주 살짝 스쳐 지나가는 매콤함도 흥을 더욱 돋운다.

거기에 짝을 맞춘 테라자스 레제르바 토론테스 와인은 와인만 마셨을 때 처음 느껴지는 열대 과일 향들이 상쾌하다. 가볍고 산미도 그리 높지 않은데, 실제로 그리 달지 않지만 달게 느껴지는 - 마치 꿀처럼 - 맛이 신기했었는데 광어 구이와 같이 짝을 지으니 처음에는 열대 과일향이 한층 입안을 복잡하지만 상쾌하게 정리해주면서 뒤에 잔잔하게 느껴지는 꿀향이 광어와 토마토의 단맛과 서로 짝을 이루며 은은한 단맛이 약간의 긴 여운을 느끼게 한다. 아르헨티나의 바다 또는 산이 느껴진다고 할까? 한 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음식과 와인이 그만큼 맛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Terrazas de los Andes Malbec 2017







Luca Old Vine Malbec 2017







Asada of Hanwoo beef sirloin, sweet roasted onion, baby potato and mini bell peppers

한우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탄력있게 씹힌다. 치미추리의 새콤함과 허브향만으로도 스테이크를 즐기는데 어려움이 없다. 어쩐일인지 토마토와 함께 파프리카도 단맛뿐만 아니라 살짝 감칠맛이 느껴진다. 거기에 잘 구운 양파의 단맛이 더해지면서 이 스테이크 하나만으로도 입안이 즐겁다.

이번에는 비교해보기 위해 나머지 준비된 와인 두 가지를 동시에 테이스팅 했었는데, 먼저 테라자스 레제르바 말벡은 좋게 말해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아주 깔끔하게 입안을 정리해줘서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짝은 잘 맞지만 너무 단조로워 지루하다고 할까?

루카 말벡은 와인만 놓고 보면 탄닌이 다소 강한데 이게 아주 은은하게 다가와서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그런데 이 스테이크와 함께 마시니 은은한 탄닌이 꽤 긴 여운을 남기면서 순간 아르헨티나의 초원이 생각나게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초원을 말이다. 그것도 푸르른 초원의 한낮보다 석양이 지는, 잔잔하게 불어오는 늦여름의 바람이 같이 떠오르는데 갑자기 항공권을 발권해서 즉흥적으로 여행이 가고싶어졌었다. 한편으로 한우가 아닌 아르헨티나산 스테이크가 생각났었다. 그럼 또 어떤 맛의 세계가 펼쳐졌을까?

지난 두 번의 협업은 모두 스페인 레스토랑과 이뤄졌었는데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우울하고 답답한 이 시기에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것조차 조심스럽지만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가고싶다면 대안으로 보칼리노의 말벡 행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같아선 매일 가고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2020. 9. 14.


지난 방문때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많았지만 마냥 레스토랑만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재방문 할 의향은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사실 그 이후 여러 차례 방문 계획을 세웠으나 메뉴 확인할 때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기에 미루다가 반년만에 재방문하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의자의 얼룩이었다.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놔뒀는데, 딱히 문제 삼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좀 웃기게 들리겠지만 여기는 롯데이니까 그렇다.






Kir Royal

그동안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이날 내 담당 서버만 그런지 몰라도 지난번과 달리 식전주로 무엇을 마실 것인지 묻지 않고, 아뮤즈 부쉬 이야기부터 먼저 하였다. 사실 한국에선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한데, 지난 방문때의 모습을 기억하면 아쉬움이 크다. 이런 것은 썩 좋은 방향으로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로 식전주 메뉴가 지난 번에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필 이 때 키르 로얄 이름이 생각 나지 않아 조금 헤매었는데 때마침 소믈리에가 주변에 있었길래 다행히도 주문할 수 있었다.






국내 파인 다이닝들의 요즘 추세를 보면 대부분 아뮤즈 부쉬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이는데,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비판하는 지점은 아뮤즈 부쉬에 공을 들이는만큼 요리에도 공을 들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스테이, 모던 레스토랑은 그렇지만은 않아서 좋다. 






하지만 그 좋은 기분은 빵이 나오자마자 금새 사라져 버린다. 여전히 빵 상태는 파인 다이닝이라 하기엔 너무 좋지 않은데, 특히 바게트는 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언제쯤 최소한 기본은 갖춘 빵을 국내 파인 다이닝에서 만날 수 있을까?










Louis Roederer Brut Premier NV

처음에는 와인 페어링을 할 생각에 짝지어진 와인까지 함께 나온 메뉴판을 달라고 하였더니 서버는 그런 메뉴판은 없다고 대답을 하였다. 이번에도 소믈리에게 마침 근처에 있어서 지난번처럼 짝지어진 와인이 적힌 메뉴판을 받아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상황이 잘 없어서 그런 것이라 좋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파인 다이닝이란 맥락에서 놓고 보면 썩 좋은 응대라고 볼 수는 없다. 

아무튼 메뉴판을 보니 지난 짝짓기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이번에는 must try 기준 모든 요리에 거의 하나씩 와인을 짝을 지어 놓았었다. 달라진 것도 거의 없지만 열 잔이 훌쩍 넘어가는 와인 가짓수를 보니 도저히 선택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하프 보틀로 무난하게 마실 수 있는 샴페인을 추천 해달라 요청하였다.






Emotion

Petals of tomatoes filled with raw marinated Patagonia shrimps


메뉴가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기에 지난번에 선택하지 않았던 emotion 을 선택 했었는데, 사실 이 요리도 지난 번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한 입 먹는 순간 깜짝 놀랐었다. 여전히 토마토가 갖고 있는 다양한 맛들을 만나긴 어려웠지만 신맛을 적절하게 잘 살린데다 미약하긴 하지만 향까지 가세해 나름대로 맛의 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먹자마자 머릿 속에 떠오르는 감정은 '여름'이었다. 곧바로 혹시 메뉴를 바꿀 수 있냐고 묻기까지 했었는데 그만큼 강렬한 첫 인상이 매우 좋았었다. 여전히 짠맛이 탄탄하게 받쳐 주지 못하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이것도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 선에서 적절하게 조절했다는 뉘앙스가 느껴져서 - 실제로 지난 방문때 셰프에게 이야기 했을때 나름대로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 딱히 문제 삼고 싶지 않았었다.






Emotion

Local tomatoes in terrine shades of watermelons cut in thin petals like an “Arlequin” burrata pearls and shards of olives from Kalamata


이어 나온 카펠리 단제로는 역시나 짠맛이 약하다 보니 흐름이 끊겨 아쉬웠지만 그 다음에 나온 이 토마토 수박 테린이 다시 계절을 느끼게 한다. 국산 수박의 강렬하지만 끝의 여운이 흐릿한 단맛이 아니라 아주 깔끔한 단맛과 토마토의 신맛, 부라타 치즈의 깔끔한 고소함과 올리브의 짠맛과 특유의 향이 더해지면서 갑자기 선선해진 이 여름의 끝을 다시 붙잡아 준다. 이때만큼은 하프 보틀로 샴페인을 주문한 것을 엄청 후회를 하였다. 짝을 맞춘 와인과 함께했다면 어떤 맛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을까?










Emotion

Farm lamb, rubbed with fermented garlic Napa cabbage parcel filled with braised shoulder Local Job's tears cooked with the meat jus, condiments and garlic meringue


다시 이어진 여름은 메인 요리에서 절정을 이룬다. 양갈비 한 점을 썰어 입에 넣으니 한낮을 지나면서 한풀 꺾인 무더위, 서서히 타오르는 석양, 산들거리는 바람 등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양고기의 부드러운 질감은 함께 제공된 사이드 디쉬가 바삭함을 더해 한층 리듬감을 더해주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괜찮은 와인과 짝을 짓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이 양갈비가 보여주는 여름이란 계절을 와인이 어떻게 마무리 지었을까?










Assortment of French and Local cheeses


원래는 디저트 바로 이동해야 하나 치즈를 먼저 먹겠다고 이야기 했었다. 딱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역시나 준비된 치즈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큰 감흥은 없었다. 이건 마냥 레스토랑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난 이런 순서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아무튼 지난번과 달라진 것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반드시 착용한 뒤 먹고 싶은 것을 담아 자리로 돌아가서 먹는 방식으로 바뀐 것은 좋았었다.






Emotion

Hot soufflé flavored with Grand-Marnier mandarine sorbet


어찌되었든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맛이다. 여전히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가운데 자리로 돌아와 받은 코스의 디저트는 일단 만들긴 잘 만들었다. 그러나 수플레가 고전적인 디저트임을 감안한다면 잘 만든 것이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수플레와 만다린 셔벗 조합이 앞서 코스의 흐름을 정리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코스의 개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쌩뚱맞은 디저트가 결국 그 흐름을 망쳐버린다.


이는 지난 방문 때에도 지적했었던 사항인데 그런대로 요리를 잘 만들어 내놓고 왜 마무리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는지 의아하다. 페이스트리 셰프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프렌치 요리의 요즘 추세가 많이 가벼워지긴 하지만 스테이, 모던 레스토랑은 그 가벼움이 너무 크다. 물론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이해는 한다. 그래서 다시 방문할 의향은 있지만 그 아쉬움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선뜻 지갑을 열어 수십만원의 금액을 기분 좋게 지불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2020. 9. 7.


지난 첫 방문 때 아쉬움이 많았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였기에 궁금했었다.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일까?










물은 따로 탄산수를 주문했었지만 다시 한 번 원래 제공되는 차도 한 잔 달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여전히 차는 구수함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음식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다. 한식 레스토랑이니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음료가 굳이 한국식 차일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음식을 즐기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수준인데 말이다.






Mulhoe (cold raw fish soup)

5 types of seafood aged for 6 hours, served in savory sauce


여름이 주제이니 물회가 나온 것 같은데, 역시나 여름을 맛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작부터 강렬한 소스가 나오는데, 된장과 고추장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설명을 들었다. 텁텁함, 끝의 여운이 길어 불쾌함이 느껴지는 단맛의 소스가 계속 방해가 된다. 향은 단조롭고 전체적인 맛 (flavour) 역시 입체적이지 않다. 코스의 시작으로 생각했다면 차라리 신맛을 좀 더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물회이니까 반드시 고추장이 들어가거나 빨간색 중심의 플레이팅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주방의 한계일까, 아니면 주방 외의 누군가가 개입한 결과물일까?






Corn Jeon (pancakes)

shrimp patties, covered with supersweet corn and topped with corn powder






Stuffed Abalone

abalone that is gently cut and steamed in traditional soy sauce, filled with beef and mushroom stuffing






Creamy Steamed Pork Gukbap

dry - aged black pork, steamed and served with wild sesame seed sauce


지난 방문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확실하게 간을 했다는 것이었다. 짠맛이 탄탄하게 받쳐주니 비록 맛의 표현에 한계가 보였을지라도 적어도 요리를 먹는다는 기분이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간이 매우 약하거나 거의 안 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옥수수전은 너무 싱거워서 아무런 맛도 못 느낀데다 지난 요리와는 다르게 질감 대조도 없었다. 생복만두 역시 부드럽게 조리는 잘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나마 감태의 향이 다소 맛을 입체적이게 느끼게 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만 그럴뿐 결과적으로 입체적인 맛 (flavour) 을 보여주지 못했다. 

돼지 국밥의 경우 재해석 한 것이 다소 눈에 띄지만 그것 뿐이다. 뽀얀 국물은 들깨즙으로 대체 했을 뿐 안에 든 부추와 돼지고기, 들깨즙의 조합은 심심했었다. 그리고, 세 요리 모두 역시 여름을 맛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들어간 재료가 여름을 상징할 뿐이었다. 돼지 국밥은 설마 여름 - 부산 - 부산의 대표 음식, 이런 생각의 결과물일까?






Steamed Blackthroat Seaperch

blackthroat seaperch matured in Hwayo makgeoli (rice wine), dried, gently steamed and served with steamed leek

금태찜은 금태 특유의 고소함을 전혀 살리지 못했고, 전형적인 한국식 생선찜의 결과물을 보여줬었다. 꾸덕하다고 표현하는 마른듯한 질감은 메뉴의 설명과는 달리 전혀 부드럽지 못했고, 지금까지 금태를 먹으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비린 향을 처음 느꼈었다. 






Sea Urchin Rice & Pollack Roe Soybean Paste Soup

rice and salted sea urchin, cooked in anchovy broth & salted pollack roe soybean paste soup, cooked in anchovy stock

왜 꼭 한식 파인 다이닝의 메인은 반상이어야 할까? 앞에서 먹었던 요리들은 결과적으로 반찬의 나열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반상의 반찬들은 나물 위주로 매우 단조롭다. 솥밥에 우니를 곁들였지만 그것이 맛에 어떤 다른 요소를 불어 넣지는 않는다. 






Dried Persimmon Sujeonggwa

Date Pie

marbles composed of ground dried persimmons, served in punch infused with cinnamon and raw sugar

mixture of chopped dates and eggs, baked and served with honey - soaked dates

디저트는 그나마 돼지감자 아이스크림이 선전을 하고 있지만 뒤를 이어 나온 전통 한식 디저트가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했다. 수정과는 앞서 돼지감자 아이스크림에 이어 계속해서 계피향이 이어져 입안이 어지러운데, 거기에 비정제 설탕으로 단맛을 내니 텁텁한 단맛의 여운이 불쾌함만 갖게 한다. 곶감을 재해석했다고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할지 몰라도 이미 양식에서는 충분히 경험했기에 식상하기만 하다. 대추 계란과자 역시 일종의 카스테라를 한식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데 전혀 부드럽지 않았고, 이 역시 텁텁한 질감만이 입안에 남기에 불쾌한 여운만 느끼게 한다.










Omyrose Yeon










Hwayo Premium Makgeoli

와인 페어링에는 지난번과 달리 한국 술이 두 가지가 들어가 있는데, 그나마 어느 정도 음식과 짝이 잘 맞는 편이었다. 오미로제 연은 물회의 텁텁하고 쓴맛의 불쾌함을, 화요 프리미엄 생막걸리는 비린향이 감도는 금태찜의 불쾌함을 어느 정도 씻어준다. 하지만 와인 페어링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요리를 즐기는데 보탬이 되는 결과물은 아니기에 썩 반갑지는 않다. 그 외 다른 와인들은 전반적으로 요리가 단조로우니 그리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비채나의 요리들은 지난 방문과 비교하면 최악의 결과물을 보여줬었다. 발전적인 모습이 아닌 그렇다고 답보하는 수준도 아닌 오히려 퇴보하는 수준이다. 언제까지 한식 레스토랑은 이런 결과물들만 보여줄 것인가? 전통의 소중함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맛을 표현하고 즐기는데 불합리하다면 과감하게 깰 필요가 있다. 비채나에서는 지난 방문때 살짝 그런 모습들이 보였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실망감이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