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el, Resort, Dining and Fashion

2021. 5. 23.

LA DAME DE PIC, RAFFLES SINGAPORE at RAFFLES SINGAPORE - 래플스 싱가포르 라 담 드 픽, 래플스 싱가포르 디너 2020년 1월


드디어 이 레스토랑의 리뷰를 쓴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의미가 있을까? 싱가포르를 다녀온 직후 전 세계적으로 터져버린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리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국에라는 평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미루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기에 이제서라도 글을 쓰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쓰는 글이라 자세한 내용들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 사실 래플스 싱가포르는 호텔로써 명성은 자자했지만 다이닝 수준은 티핀 룸을 제외하고 거의 처참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음식들이 맛이 없었다. - 옛 프렌치 레스토랑 자리에 그 유명한 - 인플루언서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 안나 소피 픽의 레스토랑이 새로 들어섰다.

싱가포르에도 미슐랭이 진출 하면서 몇몇 호텔들이 일종의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다이닝에 많이 투자하고 있는데 - 바 역시 마찬가지 분위기이다. - , 래플스 싱가포르도 재단장을 하면서 다이닝에 엄청난 투자를 하였다. 다분히 미슐랭을 노린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 미슐랭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지만 - 어찌되었든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과감한 투자는 언제나 환영한다. 덕분에 투숙객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었던 호텔 정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싱가포르 현지인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닌가!

여느 인플루언서들이라면 안나 소피 픽이 어떻고, 래플스 싱가포르가 어떻고 호들갑을 떨겠지만 나는 그런 글은 쓰지 않으므로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겠다.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음식이지 그 주변 이야기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을텐데, 사실 옛 래플스 싱가포르의 모습을 생각하면 규모가 클 수는 없다. 손님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저녁을 늦게 시작하는 서양 문화를 생각 하면 내가 이른 시간에 - 오후 여섯시에 예약하였다. - 와서 그렇다. 

오후 여덟시가 넘으면서 손님들이 많아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분위기는 아니고 다들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서 혼잡스럽다는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느꼈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크게 바라지도 않는다.





빵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제발 '식전빵' 이란 미명하에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배를 채울 수 있네 없네 따위의 후기를 그만 봤으면 좋겠다. 빵이 언제 나와서 언제 사라지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맛집 블로거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미식이란 어떤 존재인지 정말 궁금하다.

더불어 파인 다이닝에서 빵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만든 빵이란 어떤 것인지 이제는 말 하는 것조차 지겹다. 겉바속촉 따위를 외치지만 정작 이렇게 잘 구워져 나온 빵은 대부분 탔다는 반응이다. 겉이 바삭하다는 것이 딱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속이 촉촉하다는 것이 덜 구워져 축축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Elegance

Berlingots

Pasta parcels filled with French cheese fondue, Fennel broth, lovage and absinthe red Kampot pepper

가장 중요한 음식 이야기를 해보자. 이날 나는 가장 상위 메뉴인 엘레강스를 선택했었는데, 베를랭고라는 이름을 봤을 때 언뜻 머리 위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사탕이었다. 다행히도 (?) 사탕이 나오지는 않았고 모양만 본떠서 나왔는데 프렌치 레스토랑이지만 레스토랑이 있는 도시가 싱가포르임을 셰프는 잊지 않았었다. 무슨 말이냐면 눈으로만 보았을 때 판단 - 물론 싱가포르가 판단의 대표적인 도시는 아니다. - 이 먼저 떠오르지만 먹으면 싱가포르의 푸르름 - 꼭 특정 공원이 아니어도 싱가포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푸른 정경들 - 을 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정말 우아하게 맛으로 표현한 요리들, 직원들의 우아한 동작들 -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생각하면 흔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 , 우아한 분위기 - 흐르는 음악과 실내 디자인 등 - 일종의 삼위일체가 아닌가! 단순히 유명 셰프 이름만 빌려온 것이 아니다. (미슐랭을 노리는) 의도적이지만 의도적이지 않는, 이 날 지불했었던 음식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정말 황홀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Isojiman Junmai Ginjo

이 날 내 테이블을 담당했던 소믈리에는 일본 출신이었는데, 처음에 와인 페어링을 선택 했었을 때 조심스럽게 사케도 같이 추천해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다분히 일본인이라서 권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나는 요리와 짝이 잘 맞다면 크게 상관이 없었기에 괜찮다고 했었는데 이 날 가장 만족스러운 짝짓기였었다. 사케에서 살포시 느껴지는 열대 과일 향들이 생선 요리와 캐비아의 향들을 감싸주며 여전히 싱가포르에 와 있는 분위기를 이어줬었다.

이 날도 거의 대부분의 와인들을 반 이상씩 남기니 소믈리에가 정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혹시 부족하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었는데, 사실 내가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이야기 하니 안도하는 모습이 괜히 미안했었다.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인 소믈리에도 최근에 채용되어 곧 같이 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던데, 귀국 후 터져버린 코로나 19 상황의 여파가 꽤 긴 상황이어서 지금도 근무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근무하고 있다면 잘 어울리는 한국 전통 술을 짝 지을 수 있을까?













Poularde de Bresse

Marinated with sake, Baby turnip in different textures, Emulsion infused with lemon verbena and green shiso







White Mille - feuille

Ginger flower light cream, Confit grapefruit, Litsea cubeba emulsion


하지만 모든 요리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메인인 뿔라흐드는 뜬금 없이 싱가포르에서 프랑스로 훌쩍 건너 뛴 느낌을 받았었다. 프랑스에서 냉동되지 않은 닭을 직수입 했다던가? 차라리 평범하더라도 와규 스테이크를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코스의 흐름과 벗어나는 메인 요리였었다. 이는 디저트까지 이어지는데, 들어간 재료들만 보면 싱가포르라는 도시를 벗어나지 않지만 - 넓게는 동아시아 - 정작 맛은 앞서 닭과 함께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다소 맥이 빠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싱가포르를 재방문 하면 이 곳은 다시 들릴 생각이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확인해 보니 치즈 가짓수가 더 늘었었다. 내가 방문했었던 당시만 하더라도 오픈한지 삼사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으니 다시 가게 된다면 그만큼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첫 방문 당시 느꼈었던 아쉬운 부분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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