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차례 이 블로그에서 이야기 했었지만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컨펙션즈 바이 포시즌스는 오픈 초창기엔 매달 메뉴가 순차적으로 일부가 바뀌었지만 이후 분기별로 메뉴가 바뀌고 있다. 페이스트리 셰프가 바뀐지 이제 여섯달째인데, 기존 메뉴들은 사실 큰 틀에서 바뀐 것은 없었다. 맛의 변화가 일부 있었으나 모양은 기존의 틀을 거의 유지했었다고 보면 되는데, 그동안 컨펙션즈 바이 포시즌스의 홀 케이크부터 해서 보칼리노, 유 유안의 디저트 메뉴까지 바뀌는 과정에서 한꺼번에 모두 손을 댈 수 없었기에 그런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12월에 바뀌는 메뉴를 무척 기대했었다. 드디어 그의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차례였기 때문이다.
12월 1일 오픈 시간에 맞춰 가서 제품들이 나오자마자 바로 주문해서 먹어보았다.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역시 여러 차례 이 블로그에서 이야기 했었지만 현재 국산 쇼케이스들은 대부분 습도 조절이 원활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감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Green tea and Mango Santa Hat
Yuzu Vanilla Santa Hat
디저트는 여느 음식들과 달리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자유롭다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난 항상 모든 음식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생각한다. 디저트의 맛이란 것이 어찌되었든 핵심은 단맛 중심일텐데, 그동안 한국에서 가장 불만스러웠던 것이 단맛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면서 시각적으로만 너무 기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시각적이란 것도 대부분 일차원적이었다. 쉽게 말해 풍성하게 보이는 즉, 양으로 승부하는 형태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견 실망스러울 수 있는 형태이다. 이름은 꽤 귀여운데 고작 생각해낸 것이 산타의 모자란 말인가? 하지만 난 오히려 이렇게 간결하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서 디저트들의 모양을 굳이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맛도 다양하게 내고 있는가?
잠시 셰프와 대화를 나눌 때 마시멜로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니, 마시멜로의 질감이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제품들은 그의 말대로 마시멜로의 질감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 매끄럽게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린 티의 경우 이번에 새로 나온 홀케이크와 맛이 같다. 그리고 맛의 층도 뚜렷하다. 단지 질감이 다를 뿐이다. 유자의 경우 안에서 씹히는 레몬 제스트 (나는 과육만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나싶어 문의해보니 레몬 제스트가 들어간다고 들었다.) 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디저트의 질감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단맛과 신맛의 고전적인 조합을 잘 보여주는, 그러면서 형태도 일차원적이지 않아서 나는 무척 반가웠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만나고싶었던 그런 디저트들을 드디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울리지도 않는 생과일 등이 잔뜩 올라갔거나 쓸데없이 (맛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복잡하게 만든 디저트들을 만나다가 이런 단순하면서도 맛의 층은 복잡한 디저트들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Gianduja Crunch Cheese Cake
Full Chocolate Santa Hat
내 개인 취향을 이야기 하자면 사실 이 두 디저트들은 썩 반갑지 않았는데, 초콜릿의 진함 자체는 좋지만 나는 여전히 그 진함이 쉽게 적응이 안된다. 잘 내린 커피와 함께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언제 한국에서 디저트와 음료 모두 만족스러웠던 곳이 있었던가? 그래도 컨펙션즈 바이 포시즌스의 커피는 훌륭하다라고는 못해도 나쁘지는 않은 편인데, 여전히 그 진함을 상쇄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어쨌든 이건 내 개인 취향의 문제이고, 그걸 떠나서 제품 자체는 아주 잘 만들었다. 치즈 케이크도 크런치한 잔두야 초콜릿의 질감이 즐겁긴 했지만 역시 신맛이 나는 커피가 그리웠었다.
Cassis and Chestnut Mont Blanc Tart
Caramel and Dark Chocolate Tart
몽 블랑의 경우 타르트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힘을 잔뜩 줘서 잘라야 했었다. 한마디로 말해 실패한 제품이었는데, 그 부분을 제외 한다면 밤 퓨레의 단맛이 정말 기분 좋게 만들어서 이 타르트는 거의 다 먹었었다. 그리고, 카라멜 타르트는 먹는 순간 잘 만든 카라멜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다크 초콜릿의 영향도 있겠지만 단맛 뒤에 딸려오는 쓴맛이 정말 좋았었는데, 게다가 몽 블랑과 달리 카라멜 타르트는 바닥도 부드러워서 쉽게 자를 수 있었다.
Panettone
포시즌스 호텔 서울이 오픈한 이래 매년 크리스마스때 만날 수 있었던 슈톨렌은 올해에는 만들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신 기존에 납품 받았던 파네토네를 이번에 직접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하는데, (좀 더 구워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먹어보니 정말 잘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다 먹고 나서 깜작 놀랐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종종 사먹을 생각이다.
Christmas Fruits Pound Cake
난 그동안 한국에서 파운드 케이크를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어딘가에는 제대로 만든 파운드 케이크를 판매하는 매장이 있겠지만 대체로 매말라 뻣뻣하거나 잘게 부숴지는, 간단하게 말해 잘못 만든 파운드 케이크를 몇 번 만나다보니 지금도 파운드 케이크는 쉽게 손이 가지를 않는데, 이 파운드 케이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건과일을 집어넣었는데 그중 무화과의 톡톡 튀는 듯한 질감이 무척 재미있다. 눈으로도 보이지만 바닐라와 시나몬의 향이 한데 어우러져 맛을 한 층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잘 만들었는데, 아마 한국에서 파는 파운드 케이크에 익숙한 사람들은 무겁고 뻑뻑한 듯한 질감때문에 (물론 실제로 무겁거나 뻑뻑한 질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싫어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Christmas Ball Cake
Christmas Box Cake
한편 크리스마스 케이크들은 올해에도 변함없이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는데,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내 개인 취향은 이런 초콜릿 케이크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먹더라도 아주 조금 잘라서, 신맛의 커피와 함께 먹는편인데, 이 역시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그런 조합을 국내에선 쉽게 만날 수 없어서 대체로 큰 기대를 안 하는 편이다.
아무튼 내가 먹지 않더라도 항상 고마운 분들께 선물을 드리기 때문에 맛을 안 볼 수는 없었는데, 역시나 진한 초콜릿의 질감이 내게는 너무 어려웠었다. 다시 말해 내 취향에는 별로였지만 지금 내 취향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초콜릿의 진함이 속된 말로 끝내주는 케이크였다. 크런치한 밀크 초콜릿의 질감 대조, 같은 진함 속에서도 맛과 질감의 결이 다른 초콜릿의 조합들은 괜찮은 편이다.
아무튼 새로 바뀐 셰프의 새로운 메뉴가 드디어 모두 나왔다. 그리고 내가 원했었던 디저트들이 나와서 무척 마음에 든다. 물론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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