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자료를 찾아보니 2013년도에 첫 방문을 했었다. 4년동안 매달 한 번씩은 방문하였는데, 늘 방문할 때마다 미안한 것이 주류를 주문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여러번 시도해봤지만 사케 뿐만 아니라 맥주도 나에게는 매우 어려웠었다. 알콜이 조금만 들어가도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지는데, 이게 정도가 심한 경우가 있고 덜 한 경우가 있는데 정준호 스시에서 준비된 주류들은 대부분 전자에 속했다. 사장님은 그런거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시지만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사실 주류랑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라 그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나 하나 때문에 거의 주문을 안 할 탄산수를 들여 놓는 것도 그렇고, 정도가 덜 한 주류를 들여 놓는 것도 마냥 요청할 수만은 없다.
어쨌든 매달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오는 음식들이 모두 다 맛있다. 먼저 이 맑은 국을 보자. 사시미 코스를 보통 선택하는데, 그때 제공되는 맑은 국은 자라 맑은 국이다. 이날은 쥐치가 좋은 것이 들어와서 쥐치 맑은 국이 나왔는데 우선 기본 간인 짠맛과 함께 감칠맛이 잘 어우러졌다. 쥐치의 단맛도 느껴졌고, 자연산 송이의 향도 잘 어우러져 풍미가 매우 좋았었다. 안에 들어있는 쥐치나 송이도 과조리 하지 않아서 질감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사실 정준호 스시를 방문하면서 선어회라는 것을 처음 접했었는데,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단백질의 단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날 나왔던 회 중에서도 이 전갱이가 특히 단맛이 좋았었다.
사시미 코스는 스시 코스랑 나오는 요리의 가짓수나 종류가 많이 다른데, 이날 처음 접해본 토란이 인상적이었다. 토란은 어릴적에 된장국에 들어간 것만 먹어본 것이 다인데, 세 시간 가까이 불에 구워서 나왔던 토란은 그 때 먹었던 것과는 또다른 맛이었다.
옆에 있는 것은 찹쌀떡 안에 어란을 넣고 구운 것인데, 예전에 몇 번 어란을 위에 얹어서 나온 것을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짠맛과 감칠맛이 찹쌀떡 탄수화물의 단맛과 좀 더 잘 어울린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어란을 위에 얹어서 낸 것보다 이렇게 내놓는 것이 풍미가 더 좋았었다.
정준호 스시에서 나오는 조림류들은 모두 다 좋아하는데, 소스의 짠맛과 단맛의 균형이 잘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날 나왔던 생선의 종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질감도 부드러웠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요리를 맛본 뒤 마지막으로 식사가 제공되는데, 이 우동 하나때문에 정준호 스시를 재방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날이 점점 쌀쌀해지고 추워지면 더욱 생각나는데 국물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의 층, 단맛과 짠맛과 감칠맛의 조화가 꽤 좋다. 그리고, 저 청어 조림도 무척 인상적인데 이것 때문에 사실 교토 여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이 청어 우동뿐만 아니라 청어 요리 자체가 교토의 명물이라고 하니 언제 기회가 되면 여행을 가볼까 생각중이다. 색이 다르긴 하지만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키오쿠에서도 비슷한 맛을 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우동 면인데, 초창기에는 면도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은 납품 받아서 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질감이나 이런 것들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나오는데, 이날은 생강 아이스크림이 나왔었다. 그 위에 올려진 것은 녹차와 시소 씨앗이 섞여있는 아이스크림인데 녹차의 진한 맛이 꽤 인상적이었다. 생강 아이스크림은 오랜만에 맛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정준호 스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향이 인상적인 벚꽃 아이스크림과 짠맛과 감칠맛이 묘하게 단맛과 어우러지는 새우 아이스크림이다.
그러고보니 스시 코스를 안 먹어본지 꽤 된 것 같다. 언제 시간이 맞으면 스시 코스를 먹으러 낮에 한 번 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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