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 진행된 행사는 보칼리노에서 미슐랭 스타 셰프의 요리와 보칼리노 와인 바에서 타파스와 함께 와인을, 더 마켓 키친에서는 파에야를 맛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행사를 다 참여할 수 없었는데 일부 행사는 특정 신용카드사에서 독점 행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아쉬웠지만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방문한 날은 둘째날로써 이반 도밍게스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는데 사실 이런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정말 맛없는 한국 식재료를 외국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은 어떻게 최대한 맛을 이끌어 낼까와 분명 한국인들 대부분은 짜다, 향이 부담스럽다, 질감을 보니 덜 익힌 것 아니냐는 얘기가 엄청 많을텐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였다.
일단 짜다라는 얘기는 자리를 안내받아 앉기도 전에 양 옆에서 듣게 되었다. 굳이 듣고싶지 않아도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무슨 소금을 통째로 들이부은 것도 아니고 이걸 왜 짜다라고 느끼는지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 정도의 간을 하지 않으면 단백질에서 단맛 등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 어쨌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부탁을 하였다. 짜다라는 소리 안 할테니 간은 본래 하던대로 맞춰 주고, 마찬가지로 덜익었다 소리 안 할테니 질감도 본래 하던대로 맞춰 내달라고 말이다.
예약할 때 와인 페어링도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 하였는데, 일단 물은 스페인 탄산수가 제공되었다. 와인 페어링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탄산수가 제공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제공되지 않았고 선택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과연 무슨 맛으로 음식을 먹었을까?
빵이 나왔는데 이것은 예상했었지만 막상 현실을 보니 아쉽기도 하였다. 이왕이면 빵도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것으로 제공하면 좋았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부분이다. 미슐랭 셰프가 오면서 요리팀원 모두가 오는 것은 아닐테니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다.
Gran Reserva Brut Nature "TERRERS" 2009 RECAREDO
Green Tomato Soup
음식이 나오기 전에 메뉴를 보는 순간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음식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이 토마토 수프인데 왜냐하면 국산 토마토는 단맛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짠맛이나 감칠맛, 신맛은 거의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밋밋한데 아니나 다를까 단맛이 강해서 상쾌하게 시작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딸기까지 단맛이 압도적이었다.
셰프의 의도는 사실 메뉴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였다. 상쾌하게 시작하기에 그린 토마토 수프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국산 식재료가 그 의도를 뒷받침 해 줄 정도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궁금했던 아니 걱정했던 두 가지가 시작부터 벌써 등장하였다. 만약 그린 토마토가 신맛과 짠맛과 감칠맛이 적절했더라면 까바와 함께 정말 상쾌하게 시작 했을 것이다.
Oloroso Solera Especial 15 Años "DRYSACK" Bodegas Williams & Humbert
Prawns in Prawn Head Stock
처음에 이 요리를 내올 때 덜 익혔다는 얘기가 많아서 위 아래를 모두 바짝 익혔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다시 내달라고 하였다. 해산물을 쫄깃하게 익혔다는 것은 과조리 한 상태이다. 한국은 진짜 과조리한 요리가 너무 많다. 그리고 그걸 쫄깃하다니, 씹는 맛이 있다니로 치장하는데 서양 요리에서 질감의 핵심은 soft, 부드러움이다. 특히 이런 해산물류는 절대 쫄깃할 수가 없다.
어쨌든 다시 내온 새우의 질감은 아주 살짝 과조리 되긴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짠맛도 한국인들이 느끼기에는 과하다싶을 정도로 느껴지지만 사실 그 정도 간을 해야 새우의 단맛을 잘 느낄 수 있다.
Reserva Blanco "CAPELLANÍA" 2010 Marqués de Murrietta
Cauliflower, Kimchi and Mussels
우선 와인이 먼저 나왔을 때 향이 무척 좋았는데 김치랑 잘 어울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을 했던 것은 김치를 과연 어떤 식으로 요리해서 내놓을 것인가였는데, 왜냐하면 일단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한국 대부분의 파인 다이닝이 그런것처럼 김치를 어떻게든 모양을 유지한 채 내놓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걱정은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우선 김치의 흔적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향과 맛만 남아 있었는데, 김치 특유의 그런 향이 아니어서 일단 마음에 들었다. 향이 묘하게 코코넛 밀크와도 잘 어울렸고, 특히 김치의 신맛과 짠맛만 뽑아내서 컬리플라워와 홍합의 단맛을 이끌어 낸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만 홍합이나 컬리플라워가 역시 셰프가 의도한대로 맛이나 향이 받쳐주지 못했지만 이건 언제나 한국에서는 감안하고 있는 문제이기에 딱히 문제삼고싶지 않다. 물론 그건 항상 너무나도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식의 매운 것보다 영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spicy 한 것도 좋았고, 코코넛 밀크의 고소함과 한데 어우러지며 거기에 짝짓기 한 와인까지 향과 맛이 잘 어우러지니 이런 식으로 김치를 요리해서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었다. 과연 한국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한식을 재해석해서 내놓는 식당들이 있을까?
Reserva 2010 Bodegas Valduero
Spanish Roasted Mackerel & Potato Escabeche
고등어가 약간 과조리 된 것이 아쉬웠는데 셰프의 의도는 이해가 되는데 이 역시 국산 식재료가 뒷받침 못 해주던 것도 있고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좀 아쉬웠던 요리이다.
Reserva 2007 Bodegas Murua
Stewed Duck with Abalone
처음에 메인이 오리 스튜인데 오리 노린내가 난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노린내가 난다는게 한국에서는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그런 소리 안 할테니 본래 하던대로 내달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이런 향과 질감과 맛의 오리 요리를 맛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었다. 덜 익힌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부드러운 질감과 오리의 그 진한 향을 해외 여행 다녀올 때마다 한국에서 정말 그리워 했었는데 정말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었다. 와인과의 짝짓기도 잘 어울렸고, 전복도 쫄깃하지 않게 부드럽게 잘 조리했었다. 감칠맛과 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지는 그런 요리였다.
오리 위에 올려진 만두가 조금 쌩뚱맞긴 했는데 물어보니 셰프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한다. 플레이팅 면에서는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맛과 풍미 자체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물론 만두는 직접 빚었다고 한다.
Pedro Ximénez Solera Especial 20 Años "DON GUIDO" Bodegas Williams & Humbert
Homemade Cream Mille - Feuille with Bourbon Vanilla
디저트 와인 자체는 훌륭했다. 디저트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거기서 맛 볼 수 있는 디저트를 원했는데, 이 역시도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한다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기에 아쉽긴 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에스프레소로 식사를 모두 마무리 하였는데 두 시간 반동안 아쉬움과 함께 즐거움이 가득한 식사 시간이었다. 아쉬움이란 국산 식재료의 한계를 이번에도 느꼈다는 것과 여전히 한국에서 서양 요리의 맛이나 질감, 향을 못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현지화 운운하며 밋밋한 맛과 과조리의 결과물인 쫄깃한 질감들을 대체 언제까지 만나야 하는가? 해마다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음식들은 변화가 없다.
식사가 모두 끝난 뒤 셰프에게 사인을 받았지만 사실 그에게 솔직하게 묻고싶었다. 한국에서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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