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내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다면 지겨운 이야기이겠지만, 처음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자면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보칼리노와 유 유안의 경우 작년까지 일년에 두 번 대대적인 메뉴 개편이 있었지만 올 여름부터 계절별로 일부 메뉴를 교체하고 있다.
Poached pork belly rolls with vegetables in minced garlic sauce
Marinated prawns with sliced bean curd skin and persimmon
Marinated pig ear with coriander in spicy vinaigrette
전채 메뉴는 세 가지가 새로 등장했는데, 돼지 귀 냉채는 지난번에도 한 번 나왔었던 메뉴이다. 기존에는 오도독 씹히는 질감이 재미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부드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감이 들어간 냉채는 새우와 감의 단맛이 인상적인데 신맛이 적절하게 개입하고 있어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세 요리 모두 소스가 비슷해서 전반적으로 음식들이 단조롭다. 사실 돼지 귀 냉채의 경우 해외 광동식 레스토랑에서도 만날 수 있는 요리인데, - 누누히 말하지만 나는 다른 레스토랑과의 수평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 유 유안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것은 향신료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는 것이다. 돼지 귀의 질감만 놓고 보면 굉장히 부드러워서 인상적이긴 한데 뒤이어 느껴지는 매콤함과 신맛이 입맛을 돋우지만 향신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니 빈 공간이 느껴져서 뒷마무리가 아쉬웠다. 다른 두 요리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다보니 재료만 다를 뿐 느껴지는 전체적인 맛 (flavour) 는 단조로워서 차별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왜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지 이유는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아쉬움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해해야 할까? 난 업장측에서 좀 더 과감하게 시도했으면 좋겠다. 이런 제약들이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족쇄가 되어 계속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Braised hot and sour soup with lobster, assorted seafood and vegetables
Double - boiled chicken soup with watercress and jujube
산라탕은 다시 랍스터가 들어갔는데, 기존의 해산물만 들어가는 것보다 좀 더 감칠맛을 느낄 수 있어서 바뀐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유 유안 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더라도 각자 취향에 따라 더할 수 있도록 고추 기름과 흑식초가 따로 제공되지만 유 유안의 산라탕은 매콤함과 신맛의 균형이 좋아서 굳이 더하지 않더라도 즐겁게 마실 수 있어서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그날 상황에 따라 흑식초를 좀 더 추가할 때도 있지만 그냥 먹어도 내 취향에는 딱 좋다.
치킨 수프의 경우 예전 메뉴와 사실 큰 차이를 못 느꼈다. 이것 역시 왜 그런지 이유는 짐작 가능한데, 재료 수급 문제를 떠나서 한국에서 왜 돼지 지방의 고소함이 느끼함으로 표현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유 유안의 수프들은 대부분 맛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지방의 고소함이 더해지고 거기에 다른 재료가 더 들어감에 따라 맛의 층이 달라지는 것이 중식에서 수프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그런 수프를 만나기가 힘들다. 향신료나 재료의 거부감은 낯설어서 그렇다라고 억지로라도 이해 가능한데, 한국에서 돼지로 만드는 국물 요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Stewed monkfish with cabbage in spicy fish soup
Stir - fried squid with water spinach and shrimp paste
오징어류는 그렇게 좋아하는 재료는 아니어서 몇 개 집어 먹다가 말았는데, 잘 볶아서 질기 지 않고 아삭거리는 공심채의 질감과 부드러운 오징어의 질감은 좋았었다.
한편 아귀 스튜의 경우 처음에는 배추의 단맛이 느껴지면서 뒤이어 감칠맛과 지방의 고소함이 느껴지다가 끝에서 살짝 매콤함이 느껴졌었다. 좀 더 감칠맛과 고소함이 진했으면 어떨까싶지만 맛의 층이 잘 느껴지기에 만족스러웠던 요리였다. 아귀 완자도 굉장히 부드러운데, 아귀만으로 만들었다고 보기엔 많이 부드러워서 문의 하니 새우가 같이 들어갔다고 설명을 들었다.
Stir - fried kai - lan with preserved pork and morel mushrooms
Braised minced Jeju black pork balls with ginkgo nuts in oyster sauce
카이란 모렐 버섯 볶음의 경우 아삭거리는 카이란의 질감도 좋았고, 무엇보다 절인 돼지 고기의 짠맛이 돼지 고기만 먹으면 굉장히 강하게 느껴지지만 모렐 버섯과 카이란과 같이 곁들여 먹으면 맛의 균형이 잘 맞아서 부담 없이 계속 젓가락을 가게 만들었다. 특히 생강과 같이 먹으면 알싸하면서 약간의 쓴맛이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잡아줘서 좋았다.
돼지 완자는 유 유안의 바뀐 메뉴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요리이다. 한국에서 가을이란 주제로 메뉴를 선정한다면 심지어 양식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요리들이 재료쪽에 초점을 두거나 플레이팅에 초점을 두고 나오는데, 이 요리는 먹는 내내 가을이 계속 생각나는 요리였었다. 은행과는 별개로 중식에서도 가을을 주제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그러고보니 지난 여름 메뉴에서도 전채에서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오이 냉채가 있었다.
"Sichuan" wok - fried crispy tofu, chili and cashew nuts
이 요리도 예전에 한 번 나왔었던 요리인데, 메뉴명 그대로 crispy 하게 볶은 두부의 질감이 재미있는 요리이다. 매콤하지만 단맛이 강한 소스와 잘 어울리는데, 맛의 균형을 위해 신맛의 개입도 적절해서 좋았다. 아삭하게 씹히는 오이의 상큼함 역시 개입함으로써 자칫 부담이 될 수 있는 소스의 과한 맛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Wok - fried rice noodles with shredded chicken in spicy and sour sauce
예전에 사이먼 셰프가 있을 때 미슐랭 별 하나를 받으면서 한시적으로 나왔었던 산라탕면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반가운 면요리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재료 수입이 원활하지 못하다보니 쌀과 면 요리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식사 메뉴는 이것 하나만 바뀌었고 나머지 식사류는 변동 사항이 없는데, 가짓수도 적지만 무엇보다 거의 변동이 없다 보니 나처럼 자주 가는 사람들 입장에선 단조롭게 느껴진다. 선택지라도 많다면 그나마 그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겠지만 이푸면 같은 것은 아예 기대조차 하기 어렵고, 그 외 계란면 같은 것도 인기가 없다보니 잠깐 메뉴에 올랐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소스도 XO 소스가 들어가는 요리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짜장면을 끝까지 안 내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디저트는 바뀐 것이 없어서 이것 역시 아쉬운데, 사실 지난 메뉴 개편 때 잠깐 등장했었던 아몬드 수프가 인기가 없었던 것을 생각 하면 계속해서 망고 디저트만 등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디선가 하나씩 광동식을 표방하는 레스토랑들이 오픈하던데, 그 중 제대로 요리를 내놓은 곳은 몇 군데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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