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두었던 래플스 싱가포르 리뷰 글을 일년이 지나 드디어 이 블로그에 올린다. 만다린 오리엔탈 방콕과 함께 아시아권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호텔인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두 호텔 모두 재단장 작업에 들어갔었다.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팬들의 추억 등을 감안한다면 특히 이런 대대적인 보수 공사는 결과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기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래플스 싱가포르의 재단장 결과물은 호평보다 혹평이 많은 분위기이다.
예전의 래플스 싱가포르는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면 그리 친절한 호텔이 아니었다. 관광객들은 호텔로 아예 입장조차 할 수 없었고, 그 유명한 롱바와 티핀룸만 출입이 가능했었는데 특히 티핀룸은 입구조차 투숙객과 다른 곳으로 줄을 길게 서야 했었다. 그러나, 재단장 이후 투숙객이 아니어도 로비에 입장이 가능하다. 단, 바나 다이닝에 예약한 사람만 확인 후 입장이 가능하다. 오후에 애프터 눈 티 시간대에는 로비 한 가운데 앉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는데, 이런 변화는 기존의 래플스 싱가포르 팬이라면 그리 반갑지 않은 분위기일 수도 있다. - 물론 투숙객이 아니면 입장 가능한 로비의 범위는 정해져 있다. - 조용했던 분위기가 아니라 여느 호텔들처럼 바쁜 시간대에는 다소 소란스러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호텔측은 물론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지역 사회 개방에 초점을 두고 재단장 작업에 들어갔었다. 호텔 초창기는 물론 - 싱가포르가 식민지이던 시기 - 한때 동양인조차 입장이 불가했었던 배타적인 문화는 지나간 옛 이야기로 묻어 두고,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작업들이 진행되었는데 아마 그런 요소들이 반영되면서 재탄생한 결과물이기에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결과물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입구에 도착하니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직원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 유명한 도어맨도 새로운 얼굴들이 몇 명 보였었는데 세대 교체가 이뤄지는 것일까? (도어맨도 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만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하였기에 이 블로그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예전에는 지금의 로비 한 가운데에서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내 여권 등을 받아가서 체크 인 절차가 진행되었었는데, 지금은 사진에서처럼 로비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 체크 인 절차가 진행된다.
래플스, 페어몬트, 스위소텔이 모두 아코르 계열로 편입되었는데, 물론 아코르 우수 회원이라면 나름대로 혜택이 제공되겠지만 내가 아코르 우수 회원은 아니어서 정확하게 어떤 혜택들이 제공되는지 모르겠다. 얼핏 어디선가 듣기로 이 세 호텔에서는 아코르 우수 회원 혜택 제공이 제한적이라고 들었었는데, 어차피 나는 아코르의 충성 고객이 아닌 래플스 싱가포르의 충성 고객이어서 굳이 아코르 최우수 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기존의 래플스 앰배서더라고 일정 기준에 충족되면 따로 래플스 호텔측에서 등급을 부여해서 여러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래플스 싱가포르는 전 객실이 스위트인데, 이렇게 베란다는 다른 객실과 공용 공간이지만 대부분 조용한 분위기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라 크게 불편한 부분은 없다. 다만 여기에서 아침을 먹든 낮에 차 한 잔을 즐기든 괜찮은 뷰를 즐기고싶다면 팜 코트 스위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사실 원래 내 계획은 처음부터 가장 낮은 등급의 객실부터 다시 투숙하면서 리뷰 글을 모두 남길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이 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앞으로도 팜 코트 스위트를 투숙할 생각이다.
예전에는 - 물론 물리적인 키가 아닌 전자키이긴 했지만 - 키를 꽂아 문을 여는 구조였었는데, 지금은 여느 호텔들처럼 카드키를 터치 해서 문을 열면 된다. 체크 인 절차가 끝나면 나의 전담 버틀러가 객실로 안내하면서 호텔의 역사부터 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날 나의 전담 버틀러는 일본인이었다. 예전의 래플스 싱가포르는 동양인의 경우 일본인 투숙객이 많았기 때문에 일본인 직원이 몇 명 있었지만 한국인 직원은 다이닝조차 한 명도 없었는데 이제는 한국인 버틀러도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싱가포르에는 많은 한국인 호텔리어들이 있지만 적어도 내 경험안에서 그들은 한국인을 그리 반가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나는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굳이 한국인 직원을 호출할 일도 없기에 한국인 직원이 있냐고 문의 하는 경우도 없었는데, 래플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물어볼 사안은 아니었는데 대화를 하다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내 전담 버틀러가 한국인 직원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재단장을 했다지만 여전히 객실 구조는 욕실 - 침실 - 거실로 동일하다. 심지어 스위치까지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객실 구조야 건물을 새로 짓지 않는한 바꾸기 어려우니 이해되지만 스위치를 나는 다른 형태로 교체할 줄 알았는데 거의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생수는 nakd 제품을 제공한다. 처음에 체크 인 당시 전담 버틀러가 생수를 원하는지 탄산수를 원하는지 물었을 때 탄산수가 좋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혹시라도 생수를 마시고싶을 수도 있으니 둘 다 준비했다고 이야기 했었다.
원래 이 혜택은 래플스 앰배서더가 되어야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인데, 래플스 싱가포르의 경우 일정 금액 이상 지출하거나 일정 횟수를 투숙해야 래플스 앰배서더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일정 금액 지출은 어려우니 - 누적 금액이 아니라 한 번에, 정확한 금액은 기억 안나는데 기천만원이었던가? - 투숙 횟수로 앰배서더 초대를 받으려고 했으나 절반을 넘은 시점에서 아코르로 편입되면서 앰배서더 제도가 폐지되었다. 대신 앰배서더 혜택 중 하나였던 미니 바 무료 - 술은 제외 - 를 투숙객 전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니 바 무료 혜택은 투숙당이 아닌 박당으로 제공한다.
한국의 여느 호텔들처럼 미니 바 구성이 생색 내기용은 아니다.
래플스 싱가포르 투숙객에게는 체크 인 할 때 싱가포르 슬링이 함께 제공되는데, 예전처럼 로비 소파에서 우선 제공 하지는 않고 객실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다. 물론 원한다면 로비에서도 받을 수 있겠지만 예전처럼 밝은 공간에서 마실 수는 없어서 편하게 객실에서 받는 것이 좋다. 아울러 예전에는 롱바에 가면 투숙객의 경우 가장 좋은 자리를 무조건 우선 배정했었는데 - 그러기 위해 아예 좋은 좌석들은 투숙객을 위해 외부 손님을 전혀 받지 않았었다. - 이제는 바뀌어서 전담 버틀러에게 연락하면 예약을 해놓았다가 빈 자리가 발생하면 안내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금은 답답한 느낌은 여전한데 이 호텔이 지어진지 100년이 넘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TV는 당연히 예전의 브라운관 TV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예전의 객실 키는 비록 형태는 물리적이지만 전자식으로 작동했었는데, 이번에 카드 키로 바뀌었다. 카드에 나와있는 남성과 여성은 래플스 싱가포르에 투숙했었던 유명인들이다. 그들이 묵었던 객실은 따로 그들의 이름을 붙여놓았고 원한다면 해당 객실 예약도 가능하다.
웰컴 어매니티는 모두에게 제공되는지 아니면 나처럼 재투숙 하는 경우에만 제공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래플스 싱가포르에서 만든 초콜릿을 제공했었다.
사실 내가 예전 객실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 당연히 오래된 호텔이니 그런 것이지만 - 조명부터 해서 객실 내 모든 조작들을 일일이 직접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조명을 끄기 위해 그때마다 소파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 물론 생활화 되어 있다면 불편한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지어진 호텔들 대부분은 자리에 앉아서 터치만으로도 조작이 가능하다. 당연히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래플스 싱가포르에서도 태블릿 PC로 조명부터 해서 심지어 커튼까지 모든 것을 앉은 자리에서 조작이 가능하니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나는 대환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모습들을 모두 다 뜯어낸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객실 내 천장에는 팬이 설치되어 있고 실제로 작동 한다.
물론 팬보다는 에어컨디셔너가 습도 조절부터 해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욱 편리하지만.
아울러 콘센트 등의 확장 역시 반가운데 예전 콘센트 형태를 거의 비슷하게 유지 하면서도 더욱 안전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편 예전의 객실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다보니 요즘 지어진 호텔들의 스위트를 생각하면 따로 워크 인 클로짓 형태가 아닌 것은 나로서는 여전히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TV는 이제 더 이상 브라운관 TV 가 아닌데, 외부 기기 연결도 용이한지는 사용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도 최대한 예전 모습들을 간직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유독 래플스 싱가포르에 투숙할 때마다 거의 매번 트윈 베드를 선택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고, 항상 내가 예약할 때 킹 베드는 예약이 다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트윈 베드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도 예전의 흔적들을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요즘 추세에 맞게 디자인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침대맡에서도 휴대 전자 기기를 충전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잡하게 스위치 등을 물리적으로 배치 하기보다 태블릿 PC를 통해 원 터치 조작할 수 있게 해놓았다.
화장대는 내가 쓸 일이 없어서 이런 형태가 편리한지는 모르겠다.
욕실과 화장실만큼은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관점에서 나는 대만족하는 편이다.
수전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예전 모습들을 생각하면 좀 더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일일이 시계 방향 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가며 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러면서도 예전 모습들을 일부 간직하려는 흔적도 보인다.
다만 내가 투숙했던 객실의 욕조는 일정 수위 이상 차버리면 물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온전히 반신욕을 하기엔 불편했었다. 이야기 한다는 것을 깜빡해서 확인을 못했었는데, 아마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래플스의 상징은 Traveller's Palm 이다.
예전 객실에서는 욕조 앞에 변기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어서 나처럼 혼자 투숙하는 경우에는 크게 상관 없을지 몰라도 둘 이상 투숙할 경우 불편한 구조였었는데, 재단장 후에는 최근에 지어진 호텔들처럼 샤워 공간과 욕조, 변기를 모두 분리해놓았다.
고정식은 아니기에 여러모로 씻기에도 편해졌다.
특히 수전 조작이 좀 더 편리해졌기 때문에 예전처럼 수온 조절이 불편하지 않다. 이왕이면 최근에 지어지는 호텔들처럼 버튼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더욱 편리하겠지만 예전 모습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전 역시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재단장 직전의 어매니티는 Fragonard 제품이었는데 이번에 Ormonde Jayne 제품으로 바뀌었다. 예전 제품의 향도 물론 좋았지만 이번에 새로 제공되는 브랜드의 향이 무척 좋아서 나는 귀국 후 아예 향수까지 구매해버렸다. 국내에는 공식 매장이 없기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구로 구매하였는데, 굳이 시향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는 마음에 들었다.
턴 다운 서비스 직후 모습들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예전 객실 디자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재단장 한 결과물에 대해서 굳이 예전과 비교하고픈 생각이 전혀 없다. 바뀐 결과물도 마찬가지로 평가하기가 그런 것이 이 호텔은 지어진지 100년이 넘었고, 그때 건물 구조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새로운 전기 시설, 전자 기기, 가구 등을 차곡 차곡 넣기엔 제약이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예전의 배타적인 모습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호텔이 요즘 추세에 따라 호텔 정책을 변경한 것에 나는 일정 부분 동의한다. 지금도 투숙객이 아니라면 입장 가능한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투숙객이 아니라면 구경조차 못하는 로비의 달라진 모습들은 나중에 따로 글 올리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