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칼리노는 지금까지 총 세 명의 셰프가 바뀌었는데, 셰프마다 지향하는 지점이 다르다. 물론 첫 셰프와 지금의 셰프는 넓은 범위 안에서 지향하는 지점이 비슷하지만 직전의 셰프와는 많이 다른데, 누가 더 잘 하고 못 하고는 의미가 없는 평가라 생각한다.
이제 보칼리노도 웰컴 드링크가 제공된다. 여기에 또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한국의 파인 다이닝들 대부분이 아뮤즈 부쉬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것을 생각하면 단순 비교하자면 그럴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Crema di castagne, zucca e funghi shitake, crocchette di spalla di agnello brasata e tartufo nero di Norcia
Chestnut cream, pumpkin, braised lamb shoulder croquettes, black truffle
이번 메뉴부터 코스 메뉴는 단일화하였는데 개인적으로 계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코스 메뉴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셰프가 어떤 하나의 주제를 어떻게 맛으로 표현했는가 하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을 하는 후기가 하나도 없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밤 수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걱정을 했었다. 여느 한국의 다이닝들처럼 밤의 단맛이 너무 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다행히도 기우였었는데 오히려 밤의 고소함을 잘 살렸다. 정말 살짝 느껴지는 밤의 단맛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전혀 방해되지 않았고, 양고기 크로켓의 진한 감칠맛이 더해지면서 농염하면서도 요염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Conchiglioni alla Norcina, salsiccia di maiale fatta in casa, crema di Parmigiano Reggiano, fondo di maiale e tartufo nero di Norcia
Norcina style conchiglioni, house made pork sausages, 24 - months aged Parmigiano Reggiano fondue, Norcia black truffle
그러한 느낌은 계속해서 파스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Norcina 지역이 돼지로 만든 제품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돼지고기 소시지가 들어가는데 아쉬운 것은 국내산 돼지를 사용했다는 것이지만 그런 아쉬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만큼 감칠맛이 연속적으로 입안에서 터지니 농염과 요염을 지나 더욱 사람을 황홀하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요리와 짝이 맞는 와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보칼리노에서는 짝을 맞춘 와인이 있긴 하지만 선택지의 제약이 너무 많다보니 요리와 완벽한 짝을 이루지는 못한다. 재방문한다면 이 요리와 짝이 잘 맞는 와인을 보틀로 주문해야겠다. Norcina의 유명한 돼지 고기 소시지, 블랙 트러플이 들어갔으니 와인도 그에 맞춰 주문한다면?
Branzino al sale aromatizzato alle erbe e limone, couscous di verdure e salsa "Brodetto"
Steamed seabass, vegetables couscous, brodetto sauce
계속해서 메인인 농어찜까지 맛의 표현이 일관되게 느껴지는데, 계속해서 맛이 폭발적이니 이쯤에서 물릴 것 같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 짝을 맞춘 와인의 도움도 있겠지만 수프 - 파스타에서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이 생선 요리가 정점을 찍어가는 흐름인 영향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칼리노에서는 이를 따로 코스로 만들지는 않았다.
Mernga, arancia e fragola
Meringue, strawberry ad orange, berry sorbet and raspberry marmalade
그리고 그런 흐름은 이 디저트가 아주 상큼하게, 깔끔하게 마무리 해준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페이스트리 셰프는 각 다이닝별로 요리들의 특징과 다이닝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파악해서 그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들을 내놓는다. (아키라 백의 경우 오픈 초창기에는 아키라 백에서 직접 만든 디저트가 나왔기 때문에 사실 요리와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디저트까지 입안을 지치게 만들었었다.) 물론 여전히 보칼리노의 인기 디저트 메뉴는 티라미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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