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를 보니 구성은 전형적인 고전 메뉴들이어서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국내 호텔들이 잘 하는 그럴싸하게 메뉴를 구성해놓았지만 제대로 조리조차 못 하는, 그런 곳에 내가 수십만원을 써서 가야 하는가? 그런데 눈에 띄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Inspired by Nature, 설마? 하나의 개념을 맛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한다고? 그래서 전화를 걸었었다.
Taittinger Brut (Réserve) Champagne N.V.
식전주로 이미 페어몬트 골드 라운지에서 샴페인 한 잔 가볍게 마시고 올라왔지만 떼뗑져 한 잔을 더 마셨다.
Mise - en - Bouche Mariposa
사실 큰 기대는 안했었다. 한국에서 유행인 이것 저것 화려하게 눈으로만 즐거운 한 입 꺼리를 몇 가지 늘여놓겠지, 마치 조리 실력이 출중한 것처럼 눈속임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나, 마리포사는 그런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내가 오늘 먹을 요리들이 셰프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그 핵심을 확실하게 보여줬었다.
Chef's Collection
Inspired by Natue / Mordern European
Hanwoo ++ Beef Tenderloin, Forest Mushrooms, 7 days Fermented Mushroom Vinegar, Chimichurri
사실 메인으로 굳이 쇠고기를 시키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다른 선택지가 얼마나 더 있을까? 게다가 일련의 코스 요리들이 대부분 해산물이었으니 메인은 육류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직원의 권유도 있었기에 오픈 첫 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로 온김에 도전을 해보자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셰프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싶었을까? 이걸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면 X가 떠오른다. 자연을 맛으로 온전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코스로 연결되는 셰프가 말하고 싶어했던 이야기의 흐름은 이 메인 요리에서 정점을 찍고 있었다. 요리 하나 하나마다 맛과 함께 셰프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어했는지 자세하게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쓴다. 왜냐하면 미리 알고 가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단어도 'X' 라고 표기하였다. 한국에서 정말 만나기 힘든 이런 재미를 이 블로그를 통해 미리 알고 가면 맥이 빠질 것이다. 자연을 맛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 코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셰프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한 번 음미해 보시라.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갈 때에도 모든 내용을 다 알고 가버리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조리 수준도 들쑥날쑥 했었는데 예를 들어 푸아그라는 팬에 구웠다고 하기엔 겉의 질감이 너무 뭉클거린 반면 Langoustine 은 거의 완벽하다 할 정도로 잘 익혔었다. 재료의 아쉬움도 있었는데 국산 캐비아 특유의 밋밋한 짠맛이 이야기의 시작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짠맛과 지방의 고소함이 밋밋했었는데, - 아마도 손님들의 반응을 고려해서 조절했을 것이다. - 이런 요소들이 맞물려 이야기의 흐름은 원만하게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 중간 끊긴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게다가 셰프가 표현하고픈 이야기의 크기도 이보다 좀 더 규모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규모를 축소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래서, 요리 자체도 고전 요리를 살짝 트위스트 하는 정도에서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리포사를 재방문 할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이곳만의 문제는 아닌데다 아직 오픈 초창기이니 여기 저기서 더욱 부딪히기 전에, 셰프의 철학이 담긴 요리를 그나마 온전히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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