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굳이 여기저기 찾아 다니지 않는다. 어떤 극적인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물론 숙성이란 과정을 거치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긴 하지만 한국에서 인기 있는 회의 질감을 생각하면 숙성이란 과정이 어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거기에 속된 말로 재료빨이 강한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 아리아께 정도면 국내 최고의 파인 다이닝 중 하나라고 하는데 안 좋은 재료를 쓰면 그게 더 웃기지 않나? - 그렇다.
아리아께가 국내 3대장이니 뭐니 하지만 난 그런 줄세우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방문하게 되었다.
굳이 이 날 먹었던 스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하고싶진 않다. 그게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이날은 모임 때문에 간거라 대화에 좀 더 집중했었기 때문인데, 다만 전반적으로 느꼈던 감흥은 굳이 국산 식재료만 고수할 필요가 있나였었다. 국산 와사비는 톡 쏘는 맛은 좀 더 강렬할지 몰라도 단맛이나 그 뒤에 딸려오는 여운 등은 거의 없거나 이내 사그라들어서 스시를 즐기는데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국내 호텔 다이닝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음식들의 간이 안 된 느낌이었다. 짠맛이나 감칠맛은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었고, 단맛과 신맛은 충분하지 않아서 스시를 먹을 때마다 단무지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단무지들은 단맛의 여운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다시마를 밑에 깔아두고 그 위에서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얼마만큼의 극적인 맛의 변화 다시 말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까? 사실 이런건 과학의 영역이긴 한데, 업장에서는 자랑이자 하나의 특색으로 내세우는 분위기였었다. 주장대로 변화가 일어난다면 감칠맛은 그만큼 더 느껴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내가 스시에 대한 조예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역시나 굳이 스시를 먹으러 여기 저기 다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었다.
이 날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각에 도착한 것은 아니어서 시간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싶지만 이 국이 스시를 먹는 중간에 나온 것은 조금 이해가 안된다. 딱히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서버가 두고 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뭐 그렇다고 크게 불만을 가지진 않는다.
다만 이것 만큼은 아주 좋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적절한 시점의 찻잔 교체였었는데, 사실 이 정도 경험이 축척되었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차 온도가 많이 내려갔을 때, 찻잔이 비었을 때 적절하게 새로 차를 내주었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인 처음 나왔을 때 너무 뜨거워서 찻잔을 손대기가 어려웠지만, 아무튼 이런 적절한 시점에서의 교체는 파인 다이닝이라면 당연히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이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들은 아니어서 오히려 칭찬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어색하지만 아무튼 파인 다이닝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서비스들은 아주 좋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좀 더 이야기 하고픈 것이 나는 스시를 손으로 집어 먹진 않기 때문에 저 손을 닦으라고 내놓은 수건도 적절한 시점에서 교체 해주는지 모르겠는데, 식사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내놓는 물수건도 나름 신경써서 준비를 할 정도라면 젓가락도 적절한 시점에서 교체하는 것은 어떨까? 다음 음식을 먹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비단 손에 묻은 것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프라하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아시안 요리를 하던 레스토랑이었는데 - 만다린 오리엔탈 프라하의 Spices - 어쩔 수 없이 선택했었던 스시를 먹고 나서 한국에서처럼 젓가락을 다음에도 사용하려고 가지런히 옆에 놔두니 서버가 접시를 치울 때 같이 치워버리고 새로 젓가락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젓가락에는 이미 먹었던 음식들의 잔해물이 묻어 있는 상황인데, 그것이 다음 음식을 먹을 때 같이 섞인다면 온전히 맛을 느끼는데 방해가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맛이라는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모든 요소를 거기에 맞춰 준비하는 곳이 파인 다이닝이므로 젓가락 교체는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신라 호텔에서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는 세면대가 있어서 사진처럼 식사 도중에 세면대를 사용하는 직원들을 계속 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측에서 생각이 있다면 이런 자리는 당연히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
식사하는 내내 거슬렸던 것은 이것 뿐만은 아니었다. 모리타상? 아주 유명한 셰프인데 예약하는 것부터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것일까? 옆 카운터석은 식당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시끌벅적 했었는데, 한국에서 이런 모습들은 워낙 흔해서 나는 딱히 문제 삼고 싶진 않다. 어차피 식당측에 항의 해봤자 식당측에서도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지만 아마도 블랙 리스트에 올려서 다음에는 예약을 안 받아줄 것 같지도 않다.
저마다 다들 고급 식당에서 많은 돈을 내고, 재료 질이 어떻고 스시가 어떻고 사케나 샴페인, 와인이 어떻다라고 떠들며 여기가 최고라고 추켜세우지만 음식의 감흥은 둘째치고 파인 다이닝에 걸맞는 모습들을 식당과 이용객 모두 보여주고 있지 않는 현실이 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같이 간 일행이 따로 단품 요리를 추천 했으니 한 두 번 더 재방문 할 것 같긴 하다. 스시는? 처음에 말했듯이 스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자발적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고, 기회가 되면 일행들과 재방문할 여지는 있다. 아주 맛있었다라는 표현을 할만큼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로 형편 없었다도 아니기 때문인데, 내가 느낀 맛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쯤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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