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 빙수라는 음식이 서양에서는 굉장히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처음 행사를 기획 진행했을 때에는 지금처럼 페이스트리 셰프가 전담해서 빙수를 만든 것이 아니라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모든 다이닝 셰프들이 하나씩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에도 대부분의 셰프들은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빙수 - 어떻게 보면 디저트의 일종인 - 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었다. 물론 2016년 첫 해에만 그렇게 진행 했었고, 2017년부터는 계속해서 페이스트리 셰프가 전담해서 만들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국인 - 지금은 프랑스 출신 - 시선에서 바라본 빙수란 어떤 존재일까?
결국 빙수도 하나의 요리라고 생각한다면 셰프는 맛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the world of bingsu 라는 개념으로 접근했었다. 영감은 전 세계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 또는 포시즌스 리조트에서 받았다고 설명했었는데, 예를 들어 런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표기된 빙수의 경우 마치 내가 런던에서 오후에 얼 그레이 티 한잔을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교토라면 온천욕을 즐긴 뒤 고요한 정원을 바라보며 말차를 마시는 순간을 맛으로 표현했었다. 다시 말해 개념에 충실하게 맛을 표현했었다.
문제는 실제로 빙수를 먹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비단 빙수뿐만이 아니라 외국의 음식을 다루는 거의 모든 파인 다이닝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면들인데, 개념부터 부재인 곳도 많고 개념을 설정했지만 그것에 충실하게 맛을 표현하는 파인 다이닝을 나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한국인들은 아직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그냥 단순하게 맛이 있다, 없다라고 표현만 할 뿐 - 심지어 그 주장의 근거도 객관적인 경우가 드물다. 이는 이어서 이야기 할 두번째 이유와 이어지니 그때 다시 이야기하겠다. - 아무도 개념에 충실한지, 또는 충실하지 않은지 이야기 하는 비평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두번째로 맛의 설계이다. 빙수도 일종의 한국적인 디저트라고 생각한다면 서양에서의 기본적인 설계는 단맛 중심에 맛의 균형을 위해 신맛이 존재할테며, 변주를 위해 쓴맛이나 짠맛이 더해질테고, 그 밑바탕에는 유지방의 고소함 - 아무 생각 없이 우유 빙수를 쓰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물론 한국의 우유는 유지방의 고소함이란 것이 큰 의미는 없지만 - 이 깔려 있을 것이다. 질감은 눈꽃 빙수를 한국인들이 선호하니 부드럽지만 역시 변주를 위해 crispy 나 crunchy 질감도 더해진다.
마루에서 판매하는 모든 빙수는 모두 저 관점에서 만들어지는데,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망고 빙수가 신라 호텔과 비교되는 이유도 망고의 신맛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까지의 the world of bingsu 들을 보면 오렌지나 자몽, 베리류, 초콜릿이나 말차 등이 등장 했던 이유가 바로 저 이유 때문인데, 그것이 한국인들에게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다가왔었다. 게다가 한국인들에게 빙수 위에 올라가는 과일이란 싱싱한 생과일이 올라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데, 생과일은 어제와 오늘 품질이 항상 같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조리 과정을 거쳐 내놓았더니 통조림 제품을 쓰냐는 오해를 하거나, 그냥 생과일을 올렸더니 맛이 그때 그때마다 다르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그렇다면 올해의 빙수들은 맛이 어떠할까?
첫 번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올해에는 the world of bingsu 가 아닌 tour of Korea 라는 개념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왜 하필?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적어서 지금까지 만들었던 빙수의 개념을 이해 못했을 수도 있으니 국내 여행을 주제로 맛을 표현했을까? 그러나 빙수를 먹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었다.
녹차 빙수는 보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순전히 녹차라는 재료를 사용했으니 보성을 내세운다. 인삼도 마찬가지로 강화도가 인삼이 유명하니 강화를 내세울 뿐 빙수를 먹는 내내 그 어디에서도 내가 지금 강화 여행을 온 기분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해가 안되는 빙수도 있었는데 초콜릿 빙수의 제주이다.
나는 셰프가 모르고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tour of Korea, 매우 한국적인 그러니까 보성 하면 녹차가 유명하니까 보성 녹차 빙수, 고구마는 해남이 유명하니까 해남 고구마 빙수 이렇게 짝을 지어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파인 다이닝들이 대체로 이런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으니 대세를 따랐을 것이다.
두 번째 관점에서 맛의 설계는 여전히 충실하게 서양에서의 디저트와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비난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막걸리 빙수를 살펴 보자. 막걸리는 신맛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맛이 당연히 나는 것인데 막걸리에서 신맛이 난다고 비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신맛을 내기 위해 요거트를 같이 내놓았더니 너무 시다고 항의가 들어와서 요거트의 신맛이 밋밋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 메뉴가 나오면 첫날에 어떻게든 사먹을려고 노력한다. 거의 대부분 하루 이틀만 지나도 처음과 맛의 설계가 달라진 경우를 그동안 너무 많이 만났었다.)
한국의 과일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 단맛 일색인데 그 단맛이 깔끔하지 않고, 과일이라면 응당 갖고 있어야 할 신맛들은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생과일은 올리지 않고 요거트를 내놓았을텐데 요거트의 신맛이 반갑지 않다면 안 먹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밋밋하게 만들어서 먹는 것이 나을까?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달지 않은 디저트를 찾으니 빙수도 좀 덜 달게 만들었더니 이번에는 달지 않아서 별로라는 글도 본 적이 있다. 제주와 트러플이 도저히 연결되지 않아 문의를 하니 원래는 한라봉을 사용할 계획이었다고 들었다. 당연히 신맛이 거의 없는 밍밍한 단맛의 한라봉을 쓰면 초콜릿과 짝이 맞지 않다. 그리고, 생각대로 한라봉이랑 잘 어울리지 않아 트러플을 사용했다고 들었다.
tour of Korea 라는 개념을 충실하게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비난을 보게 되면 도대체 한국에서 미식이란 존재가 무엇일까 곱씹게 된다. 멀리 나갈 필요 없이 빙수만 놓고 보자. 신라 호텔의 애플 망고 빙수처럼 과일은 무조건 단맛 중심, 신맛 따위는 필요 없고 맛의 균형이니 변조니 이런 것들은 무의미하다. 곱게 간 얼음 위에 단맛 중심의 생과일, 그것도 이왕이면 열대 과일 하나만 올리면 된다. 그렇게 만들지 않을거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비교만 당하고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
열심히 만들어봤자 비아냥이나 듣고 비교를 당할바엔 차라리 안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차라리 잘 만드는 아이스크림을 계절 상품으로 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복잡한 현실이 싫어서인지 여전히 단순하게 만든 빙수를 사랑한다. 호텔도 결국 영업이 잘 되어야 계속 문을 열 수 있을테니 빙수를 만들어 판매를 할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많은 사람들이 날이 더워지니 시원한 호텔 라운지에 앉아서 망고 빙수를 비롯한 여러 빙수를 먹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라 호텔이 더 낫네 이럴 것이다. 그럴거라면 굳이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 왜 갔는가? 사람들은 그저 분위기, 사진, 내가 지금 여기에 앉아 있다 이런 관점에서 파인 다이닝이나 호텔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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