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캐비아 스페셜 메뉴 행사를 진행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맛이 뻔히 예측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선 생산되는 "짜지 않은" 캐비아를 사용한다는 이야기에 더욱 더 기대를 접었었다. 기본적으로 염장 식품인데 "짜지 않은" 이라니? 물론 캐비아에 저염 캐비아가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짜지 않은" 이라는 말은 저염이 아니라 거의 무염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을 보러 간 이유는 그 뻔한 예측이 됨에도 불구하고 셰프 치로는 어떤 요리를 선보일 것인가 하는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어떤 요리를 선보였을까?
여러번 언급하였지만 양식의 세계에서 맛의 측면을 놓고 보면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술을 못 마시는 경우라면 탄산수가 그나마 대안일텐데, 아무래도 평소 와인을 접하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보통은 소믈리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급적 와인 페어링을 부탁드리는데, 난 이것이 메뉴에도 다시 반영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양질의 와인이 생산되는지까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준비가 가능하다면 와인 페어링도 다시 세분화 해서 하나는 한국 와인,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와인, 또 다른 하나는 프랑스나 칠레 등의 국제적인 와인 이렇게 선택지를 넓힌다면 음식을 즐기는데 더욱 즐거움을 안겨줄텐데 한편으로 그게 한국에서 시도할만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날도 와인 페어링을 부탁드렸고 결과적으로 짝짓기가 아주 좋았었다.
Boiled Egg on Sour Cream Potato, Caviar, Dried Capers
한국 계란은 맛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로 셰프는 그 안에서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그는 새로운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마다 계란 요리를 하나씩 선보이는데, 그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 한다. 단지 재료가 그것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이 정도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 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캐비아는 그렇게 크게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캐비아가 빠진다고 해서 맛이 아주 달라지지 않는다. 그 폭발적인 짠맛이 나왔다면 오히려 더 좋았을까?
Green Apple and Asparagus Soup, Goat Cheese, Caviar
수프는 사실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다. 사과의 신맛이 잘 느껴질까와 사과의 단맛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일단 사과의 단맛은 아슬아슬하다. 조금만 더 달아도 수프로써 그 의미가 퇴색되었을텐데, 이 정도면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의외로 신맛도 잘 느껴진다. 여기서도 캐비아는 물음표가 먼저 떠올랐는데, 염소 치즈가 오히려 수프의 맛에 입체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Risone in Bell Pepper Sauce, Caviar, Yogurt Pearls, Spring Onion
리조네의 질감이 독특하다. 리조또의 일종인 줄 알았는데 파스타의 한 종류란다. 그러고보니, 치로 셰프는 그동안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마다 계란 요리와 함께 다양한 파스타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나는 이런 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전형적인 한국식 - 간이 덜 된, 소스는 흥건하게, 질감은 흐물거리나 아주 쫄깃하게 - 요리를 하지 않아서 좋다. 물론 여전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짜다라는 이야기가 많다. 어찌되었든 이 리조네 역시 새로운 경험 차원에서 정말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에서도 캐비아의 역할은 물음표였다.
Pan - Seared Sea Bass Fillet, Caviar, Sweet Pea Salad, Lemon Curd
한국에서 잘 구운 생선 요리를 만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조리의 문제보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형태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대체적으로 과조리 된 상태를 선호하다 보니 이 정도 부드러운 질감을 만나기가 의외로 어려운데, 기분좋은 단맛의 완두콩 샐러드도 맛있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의외로 만나기 힘든 신맛을 레몬 커드를 통해서 잘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디저트 사진은 일부러 첨부하지 않았다. 이 날 먹었던 요리 중에서 캐비아를 주제로 생각한다면 디저트가 가장 그 주제에 잘 부합되는 요리였었다. 생각보다 "짜지 않은" 캐비아가 디저트에서는 오히려 단맛을 잘 이끌어 내 주었고, 디저트의 부드러운 질감과 잘 어우러졌었는데 디저트를 제외하고 다른 요리에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폭발적인 짠맛이 보태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맛에 미묘하게 영향을 줄 지언정 없어도 될 정도로 맛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면 굳이 캐비아 스페셜이라고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혹시나 아직 맛을 보지 못한 다른 캐비아 스페셜 메뉴들은 맛이 어떠할지 궁금해서 다음날 재방문 하였다.
전날과 달리 이 날에는 아뮤즈 부쉬가 나왔는데, 여기에서도 캐비아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캐비아가 올라갔으니 만약 가격을 책정한다면 캐비아가 올라가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더 오르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준은 아니다.
Spaghetti Chitarra in Garlic Oil, Caviar, Fennel, Lime
스파게티 면의 모양이 조금 독특한데, 나는 이런 시도들이 정말 즐겁고 좋다. 씹히는 면의 질감도 좋았고 - 아마 인터넷에는 이런 평가가 올라올지 모르겠다. "면이 덜 익었네요." - 무엇보다 향이 정말 좋았는데, 여기에서 그나마 캐비아의 질감과 향이 개입되면서 총체적인 맛을 잘 이끌어 내주고 있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 이 "짜지 않은" 캐비아를 셰프는 어떻게 받아들여서 맛을 표현하려고 했을까? 나는 taste보다 질감에 초점을 좀 더 두고 거기에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맛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그 폭발적인 짠맛의 보탬이 아니라, 흔히 비릿하다라고 사람들이 표현하는 향과 입안에서 터지는 부드러운 질감을 잘 나타내주는 요리들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Grilled Hanwoo Beef Sirloin, Caviar, Pickled Radish, Potato Fondant, Watercress
이 요리에서도 나는 먼저 눈길이 간 것은 무 절임이었다. 한국의 양식 세계에서 늘 아쉬웠던 신맛의 부재가 이 무절임이 한 방에 날려주었는데, 적당한 질감이 스테이크와 크게 엇나가지도 않았고 - 너무 흐물거리거나 너무 아삭거리지 않았다. - 씹히는 소금의 짠맛과 스테이크 지방의 고소함, 감자의 단맛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정말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에서도 캐비아는 짠맛의 보탬보다 질감 차원에서 맛을 보태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캐비아에 초점을 둔다면 메뉴에는 없는 캐비아가 올라간 디저트가 주제에 가장 부합되는 요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그 "짜지 않은" 맛 때문에 다른 차원, 즉 질감과 향에 좀 더 초점을 두고 메뉴를 구상했다면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불만은 없다.
하지만 호텔이라는 이름 때문에 고급화 전략 차원에서 캐비아 스페셜 메뉴를 생각했다면, 나는 포시즌스 호텔에서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푸아그라를 내놓고, 캐비아와 트러플을 음식 위에 올린다면 가격을 상대적으로 더 올릴 수 있으니 이것도 고급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가격이 높다면, 그리고 이름 있는 호텔에서 그런 전략을 내세운다면 더욱 더 고급화 이미지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졸부들의 잔치 수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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