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셰프와 매니저가 바뀐 벤코토는 결과부터 미리 이야기 하자면 음식과 접객 모두 달라졌다. 이게 안 좋은 것에서 좋은 것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 어떤 점들이 달라졌는가?
빵이 나오기 전 올리브 오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데,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난 빵 이야기를 하고싶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파인 다이닝을 한정해 놓고 보면 제대로 만든 빵을 만난 적이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식이 빵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대체로 덜 구워졌거나 음식과 결이 안 맞는 빵들이 많았었다. 나는 적어도 파인 다이닝이라면 빵만큼은 제대로 만들거나 그럴 여건이 안되어서 외부로부터 공급 받는다면 수준에 맞는 빵을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벤코토에서 나오던 빵은 꽤 만족스러웠다. 조금은 질척거리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아시아권에서 이 정도 수준이라면 내 경험 안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물론 파인 다이닝이라면 이 정도 수준이란 것이 기본이어야 할테지만 워낙 그런 곳들을 찾아보기 힘드니 반가운 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가웠었다. 그래서 새로 온 셰프의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예전에 벤코토에 갔었을 때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이페이도 서양 음식을 먹으면서 와인을 함께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란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와인 짝짓기가 조금은 형식적라는 느낌이 강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와인을 마시는 테이블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면 이번 방문에는 대부분의 테이블 위에 와인잔이 놓여져 있었다. 그만큼 회전율이 좋다면 - 물론 이 날만 그랬을 수도 있다. - 업장과 소비자 모두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튼 이날 와인 짝짓기는 화이트 와인은 살짝 음식과 어긋나는 느낌이었지만 - 와인이 많이 튀어서 잘 만들었던 리조또와 방향이 달라서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 스파클링 와인과 레드 와인은 음식과 짝이 잘 맞아서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었다.
Risotto Alla Marinara
Seafood risotto at La Marinara cooked with cacciucco broth and tomato sauce, served over a composition of fresh seafood selection, oyster, red prawns, scampi, clams and sea urchin
두 가지 코스 메뉴 중 이탈리안 정통 음식을 트위스트 한 테이스팅 4코스를 주문 했었는데, 하필 내가 방문하기 며칠 전 불었던 태풍 때문에 비둘기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메인이 바뀌면서 - 양고기로 바뀌었다. - 디저트도 같이 바뀌었다. 그래도 선택하겠냐는 물음에 내가 응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아쉬움은 있어도 불만은 없는데, 빈말이라도 매니저와 셰프 모두 다음에 오면 비둘기는 꼭 준비 해놓겠다는 대답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던 달라졌다는 것이 이런 부분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셰프나 매니저 정도이니까 이렇게 농담이라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서버들의 접객을 보면 예전에는 캐주얼하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격식을 제대로 갖춘 느낌이었다.
지난 셰프의 음식들은 플레이팅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에 그에 맞춰 매니저를 비롯해서 서버들도 흥이 넘치는 편안하게 다가오는 접객이었다면, 바뀐 셰프의 음식들은 플레이팅부터 해서 말 그대로 파인 다이닝답게 여러가지로 신경 쓴 모습에 맞춰 매니저를 비롯한 서버들의 접객 또한 정중하게 다가왔었다.
아무튼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하자면 위 사진만으로 설명을 다 할 수 있다. 플레이팅부터 꽤 신경 쓴 티가 나는데, 조리 상태도 모두 교과서적인 그야 말로 완벽한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저렇게 내놓는다면 십중 팔구는 덜 익혔다고 항의 했을만한 해산물과 쌀의 조리 상태나 - 늘 말하지만 해산물이 쫄깃한 질감이라면 대부분 과조리 상태이다. 회도 먹는 나라에서 새우나 굴을 덜 익혀서 내놓은 것이라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리조또는 대부분 한국식 죽처럼 끓여 내놓는 곳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짠맛과 소스의 감칠맛이 밑바탕에 잘 깔려 있고 그 위에 해산물의 단맛과 소스와는 다른 결의 감칠맛 등이 가세하면서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층이나 향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졌었다. 무엇보다 셰프가 의도한 방향을 잘 따라오는 주방팀 조리 실력의 탄탄함이 인상 깊었다. 해산물과 쌀 모두 과조리 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사실 이건 파인 다이닝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내용이긴 한데, 한국에서 워낙 말도 안되는 음식들을 많이 만나서 오히려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화이트 와인이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서 맛의 여운을 너무 쌩뚱맞게 끊어줬다는 것이다. 또 기대치가 상승한 상황에서 비둘기가 아닌 양고기가 나오다보니 양고기 자체는 리조또와 마찬가지로 잘 만들었지만 맛의 방향이 달라져버리니 이내 기대치가 하락해버리는 아쉬움 - 물론 이것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코스 메뉴의 변동이 있었던 상황이라 코스 흐름의 맥락이 끊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 도 있었다.
내 블로그에 주로 광동식 레스토랑 포스팅이 많다 보니 중국 음식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는 일식이나 양식 등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양식 중에서도 이탈리안 요리를 좋아하는데, 대체로 아시아권에서는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아시아권에서 받아들이기엔 익숙치 않은 맛들 때문에 그럴텐데 - 대표적인 것이 짠맛이 너무 강하다고 항의 하는 -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 의외라고 할 정도로 벤코토는 짠맛의 밑바탕이 정말 탄탄했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타이페이에서도 대체로 그런 항의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아시아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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